연애를 할 때는 모든 것이 마냥 좋습니다. 상대의 단점마저도 언젠가는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컸고, 그마저도 사랑의 일부처럼 보였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시절에는 어느 한쪽이 감내하고 맞추는 일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고, 그 희생이 사랑의 증거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저 역시 연애 시절을 떠올리면 늘 남편이 저에게 맞춰주던 기억이 먼저 떠오릅니다. 내가 화를 내도, 괜히 짜증을 부려도, 먹고 싶은 것을 말하면 곧장 “그래”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때의 그는 계획적인 성격답게 주말마다 스케줄을 빈틈없이 채워 넣고, 저와 함께 새로운 것들을 도전했습니다. 직접 은반지를 만들어 선물하던 그의 손길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이 사람은 평생 나에게 다 맞춰줄 것이다”라는 확신이 되어 결혼을 선택하게 된 것이지요.
물론 성실함과 책임감도 결혼을 결심하게 만든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결혼한 지 15년이 된 지금,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연애와 결혼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결혼은 단순히 나와 남편 사이에서만 다투는 일이 아닙니다. 시댁과의 오해로 남편과 갈등을 빚기도 하고, 남편의 형제 문제로 싸움이 나기도 합니다. 연애 때는 무조건 나를 맞춰줄 것 같았던 사람이었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역할이 분명해지면, 어느 순간 나 혼자 희생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육아 우울증이 극에 달했을 때는 남편이 회사에 다녀온다는 사실만으로도 원망스러웠습니다.
연애는 때로 한 사람의 희생만으로도 유지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생활 습관과 패턴, 장점과 단점이 모두 드러나고, 때로는 연애 시절에는 사랑스럽게 보였던 부분이 결혼 생활에서는 불편한 단점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혼인신고를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마음가짐은 자연스럽게 달라지고, 떨리던 가슴은 어느새 잊히며, 육아와 살림에 치이다 보면 “우리가 정말 사랑을 했었나?”라는 의문조차 들 때가 있습니다.
저는 육아 초기에 특히 힘들었습니다. 친정 부모님이 곁에 계시지 않아 물어볼 곳도, 도움을 받을 곳도 없었습니다. 친한 언니가 있긴 했지만, 같은 질문을 반복할 수 없어 혼자 감내해야 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제가 아파도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폐렴으로 40도가 넘는 열이 나도 아이 옆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나도 아프고, 아이도 아프고, 남편은 밤늦게야 집에 돌아오니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습니다. 그 시절의 나는 그저 남편이 미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보니 남편도 나를 위해 애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루 종일 불 앞에서 일하는 남편을 걱정해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했고, 남편은 그런 나를 위해 일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집으로 와 아이를 돌봤습니다. 첫째 이유식을 가장 많이 만든 사람이 아빠라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습니다. 셰프였던 남편은 직접 재료를 다듬고, 냉동실에 넣어두고, 이유식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평일 하루 쉬는 날에는 “혼자 나갔다 오라”며 시간을 내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때 그의 배려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결혼 생활 10년이 지난 어느 날, 저는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남편에게 내가 이미 참 많은 사랑과 배려를 받았다는 사실을. 그 깨달음 이후, 저는 더 적극적으로 남편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존중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결혼은 결코 한 사람의 희생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남편이라면, 아내라면 당연히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고, 매일의 사랑과 배려가 모여야만 결혼이 단단해집니다.
결혼은 작은 일상에서도 타협과 존중이 필요합니다. 남편은 결혼 후, 내가 짧은 치마나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연애 시절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던 부분이었는데, 결혼 후에는 달라졌지요. 저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옷장을 정리했습니다. 화장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남편은 짙은 화장을 좋아하지 않았고, 나 역시 크게 선호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화장을 줄였습니다. 남편은 술을 많이 마시는 것도, 밤늦게까지 밖에 있는 것도 싫어했습니다. 나가면 전화가 여러 통 오곤 했습니다. 결국 저는 점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불행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에겐 오히려 행복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각자의 취향을 조금씩 맞추어 가는 과정 속에서 안정과 평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도 제가 그에게 맞추려는 노력을 알고 있고, 그래서 그 또한 제가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 애씁니다. 부부는 이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저는 장난처럼 “자기야, 나 죽으면 어떡할 거야? 혼자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면 남편은 늘 “왜 먼저 간다고 생각해? 내가 먼저 갈걸”이라고 대답합니다. 그 말에는 농담 속의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빨래를 해본 적도, 식기세척기를 돌려본 적도, 심지어 샤워 후 머리카락을 치운 적조차 없는 남편이지만, 저는 묵묵히 그의 곁을 지킵니다. 그가 건강하게 오래 살아줄 수만 있다면, 그 쾌적함을 책임지는 일이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연애의 온도는 늘 뜨겁습니다. 평생 그 뜨거움이 지속될 것 같지만, 결혼은 다릅니다.
결혼의 온도는 36.5도, 언제나 일정해야 합니다.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우고, 부모의 말투와 습관을 고스란히 닮아갑니다.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자주 본 아이들은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반면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세상 어디서든 당당하게 “우리 부모님은 서로 사랑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들 앞에서 다투지 않습니다. 혹여 갈등이 생겨도 장난처럼 대화하며 풀어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우리가 다투는 모습을 보고도 “이게 싸우는 거야?”라며 웃습니다. 우리에게 싸움은 곧 대화이고, 대화는 결국 사랑의 또 다른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결혼 생활에서 온도가 떨어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것을 연애 시절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지나간 전 남자친구, 전 여자친구와 비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연인은 지나갔지만, 남편과 아내는 현재를 살아가는 동반자입니다. 서로를 바라보고 존중하며 오늘의 체온을 지켜낸다면, 우리는 반드시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연애와 결혼은 닮은 듯 보이지만, 살아내다 보면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매일 새롭게 깨닫습니다. 연애가 두 사람의 감정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 시간이자, 설레는 순간의 연속이었다면, 결혼은 두 사람이 함께 짊어져야 할 현실과 책임, 그리고 생활의 무게까지 포함된 긴 여정이었습니다.
저 역시 연애 시절에는 남편이 제게 보여주던 배려와 희생이 당연한 듯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아이를 낳고, 가족이란 울타리를 꾸려가면서 깨달은 것은, 결혼은 결코 한 사람의 일방적인 희생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는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진리였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내가 혼자 희생하는 것 같아 원망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남편 또한 저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내려놓고 배려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 오히려 저는 더 많이 사랑을 표현하고 존중하려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결혼의 온도를 늘 36.5도로 지킨다는 것은, 결국 서로가 서로의 ‘체온 조절 장치’가 된다는 뜻이 아닐까요. 어느 날은 내가 남편을 위해, 또 다른 날은 남편이 나를 위해 온도를 맞추는 것. 때로는 뜨거워지고 때로는 식어가지만, 결국 서로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바로 부부의 삶이라 믿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연애와 결혼을 단순히 ‘차이’로만 바라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연애에서의 뜨거움과 결혼에서의 평온함이 서로 다른 색깔의 사랑임을 이해한다면, 결혼 생활은 훨씬 더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만 유지되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대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작은 순간에도 고마움을 표현하는 관계야말로 긴 시간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저희 부부 역시 여전히 배워가는 중입니다. 다만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결혼은 완벽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두 사람이 조금씩 맞추며 살아가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글을 읽으신 분들 역시 각자의 결혼 온도를 돌아보고, 혹여 식어가고 있다면 작은 배려와 따뜻한 말 한마디로 다시 36.5도를 맞춰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 온도 속에서, 부부는 물론 아이들까지도 가장 따뜻한 사랑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