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로남불’이 무너뜨리는 결혼의 공정함
결혼은 두 성인의 ‘독립’이지, ‘확장된 의존’이 아니다.
결혼식장에 들어설 때 우리는 부모님의 손을 놓고 배우자의 손을 잡는다.
이 의식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다. 이제까지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던 부모라는 둥지를 떠나, 배우자와 함께 나만의 새로운 둥지를 짓겠다는'완전한 독립 선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부부가 몸만 나왔을 뿐, 심리적인 탯줄은 끊어내지 못한 채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탯줄을 무기 삼아 배우자에게 기이하고도 이기적인 이중잣대를 들이대곤 한다.
"우리 엄마는 편하니까 와서 자고 가도 되지만, 시어머니는 불편하니까 절대 안 돼."
"우리 부모님 반찬은 사랑이지만, 시댁 반찬은 입에 맞질 않아."
오늘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저지르고 있는, 결혼 생활을 좀먹는 '치졸한 이중잣대'와 '공감 능력의 부재'에
대해 아주 솔직하고 불편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결혼 커뮤니티의 단골 논쟁 주제가 있다. 바로 '현관문 비밀번호 공유' 문제다.
흥미로운 건 여기에 적용되는 기이한 논리다.
많은 아내가 친정엄마에게는 "반찬 넣어주고 가라"며 쿨하게 비밀번호를 알려주면서, 시어머니에게 알려주는 것은 "사생활 침해"라며 결사반대한다.
이것은 '사생활 보호'가 아니라 명백한 '차별'이다.
만약 사생활이 중요하다면 친정 부모에게도, 시댁 부모에게도 똑같이 비밀번호를 공유하지 않는 것이 맞다. 그것이 부부의 독립된 공간을 지키는 '선(Line)'이다.
하지만 "내 부모는 가족이고, 네 부모는 손님(혹은 침입자)"이라는 무의식적인 태도가 이중적인 행동을 낳는다. 남편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자신의 부모만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거나 문전박대당하는 느낌을 받을 때, 과연 아내의 친정을 진심으로 존중할 수 있을까?
문을 잠그려면 양쪽 다 확실하게 잠그고, 열려면 양쪽 다 공평하게 열어야 한다. 내 부모가 소중하면, 배우자의 부모도 똑같이 소중한 누군가의 부모다. 이 간단한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무너지면, 그 집의 현관문은 불행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
가장 심각한 내로남불은 '잠자리' 문제에서 터진다.
금요일 저녁, 퇴근하고 맥주 한 캔 하며 쉬고 싶은 남편에게 아내가 해맑게 통보한다.
"오빠, 엄마가 반찬 해준다고 며칠 와서 주무시고 가신대. 좋지?"
이 문장에는 남편의 의사를 묻는 배려가 없다. 아내의 뇌 구조 속에서 친정엄마는 '나를 도와주는 편한 사람'이기에, 남편에게도 당연히 '좋은 존재'일 것이라는 엄청난 착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에게 장모님은 직장 상사 다음으로,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어려운 '어르신'이다. 그런 분이 내 안식처인 집에, 그것도 며칠씩 상주한다? 그 순간부터 집은 휴식처가 아니라 '제2의 직장'으로 변한다.
남편은 속옷 차림으로 물을 마시러 나올 수도 없고, 소파에 널브러져 있을 수도 없다.
퇴근 후에도 '사위'라는 가면을 쓰고 감정 노동을 해야 한다.
더 기가 막힌 건, 입장을 바꿨을 때의 태도다.
만약 남편이 "여보, 우리 엄마(시어머니)가 며칠 와서 주무신대"라고 한다면?
아마 아내는 기겁하며 소리칠 것이다. "미쳤어? 시어머니가 오는데 내가 어떻게 쉬어? 오빠는 생각이 있어?"
바로 그거다. 본인은 시어머니가 집에 오는 게 숨 막히고 불편해서 싫으면서, 왜 남편은 장모님이 오는 걸 괜찮아할 것이라고 단정 짓는가?
이것은 단순한 이기심을 넘어선 '지능적인 공감 능력의 결여'다.
"내가 불편하면, 내 남편도 불편하다." 이 초등학생도 알 법한 명제를 망각한 채,
"우리 엄마는 다르다"고 우기는 것. 그것은 배우자에 대한 명백한 정신적 폭력이다.
집은 부부의 성역(聖域)이다. 두 사람이 사회의 갑옷을 벗고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에,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부모를 끌어들이지 마라. 정 부모님과 밤새 수다를 떨고 싶다면, 당신이 친정 또는 시댁에 가서 자고 오는 것이 예의다.
음식 앞에서도 이중잣대는 춤을 춘다. 친정엄마가 바리바리 싸 보내준 반찬을 보며 아내는 눈물짓는다.
"우리 엄마가 고생해서 만든 건데..."라며 남편에게도 감동을 강요하고,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먹어 치운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보내준 김치통 앞에서는 태도가 싸늘하게 식는다.
"아, 젓갈 냄새나. 우리 집 입맛이랑 안 맞는데 왜 자꾸 보내셔?"
"냉장고 자리도 없는데 짜증 나게."
그 음식을 만든 시어머니의 손도, 친정엄마의 손만큼이나 쭈글쭈글하고 관절염으로 아픈 손이다. 아들을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담근 그 정성을 '음식물 쓰레기' 취급하는 것은, 남편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음식의 간은 안 맞을 수 있어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의 무게는 똑같다. 내 엄마의 정성이 눈물겹다면, 남편 엄마의 정성에도 최소한의 예의와 감사를 표하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품격이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태도는 역겹다.
"엄마니까 당연히 봐줘야지."
"시어머니가 애 봐주는 게 며느리 돕는 거지."
착각하지 말자.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를 키우느라 이미 청춘을 다 바치셨다.
이제야 자식 농사 끝내고 은퇴 후의 여유를 즐기셔야 할 분들이다.
그런 분들에게 다시 육아라는 고된 노동의 굴레를 씌우는 건 불효를 넘어선 '착취'다.
육아는 온전히 부모 된 자, 즉 우리 부부의 몫이다. 힘들다고? 내 시간이 없다고? 그 힘듦을 감당할 각오 없이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됐다.
부모님께 아이를 맡긴다면, 그것은 '도움'이 아니라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고용한 '서비스'로 접근해야 한다. 감사해하고, 죄송해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부모님이 손주 보고 싶어 하시니까 맡기는 거야"라는 비겁한 핑계 뒤에 숨어, 늙은 부모의 관절과 시간을 갉아먹으며 편하게 살려는 당신. 우리는 그 의존의 벽을 넘어서야 진짜 어른이 된다.
육아와 가사의 분담 문제로 싸우는 부부를 많이 본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배우자가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동안, 집을 지키는 사람은 '노는 사람'이 아니라 '가사 노동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종종 이런 경우가 있다. 낮 시간 동안 아이를 핑계로, 혹은 그냥 게을러서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퇴근하고 돌아온 배우자에게 "나 혼자 하루 종일 집에 있느라 힘들었어. 설거지랑 청소는 자기가 해"라고 떠넘기는 경우.
물론 육아는 힘들다. 하지만 밖에서 상사의 눈치를 보고, 실적 압박에 시달리며, 만원 지하철에 시달려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배우자의 피로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낮에 자신이 해야 할 몫을 다하지 않고, 퇴근한 배우자에게 "이제부터 네 차례야"라고 바통 터치하듯 일을 던지는 건 '독박 육아' 타령이 아니라 명백한 '직무유기'다.
가정은 두 사람이 함께 굴리는 수레다. 배우자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적어도 난장판인 집구석을 보여주며 한숨부터 쉬게 하지는 말자. 그것은 부부 사이의 기본적인 예의다.
결혼 생활이 삐걱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몸은 어른인데 마음은 여전히 부모에게 응석 부리고 싶고, 배우자에게 떼쓰고 싶은 '어른 아이'들이 만났기 때문이다.
지켜야 할 선은 '양가 부모님에 대한 공평한 존중'이다.
내 부모가 귀하면 네 부모도 귀하다는 당연한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 엄마는 편하니까 와서 자도 돼"라는 말도 안 되는 뇌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넘어야 할 벽은 '의존심'이다. 육아도, 살림도, 경제력도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우리 힘으로 해내겠다는 결기. 설령 조금 가난하고 몸이 힘들더라도, 남의 도움 없이 우리 가정을 꾸려나갈 때 비로소 우리는 부모라는 꼬리표를 떼고 진짜 이 집의 주인이 된다.
: 내 아이가 결혼해서 나처럼 산다면?
가끔 행동의 기준이 헷갈릴 때, 저는 딱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먼 훗날, 내 딸(혹은 아들)이 결혼해서 배우자에게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을 똑같이 한다면,
나는 박수 쳐줄 수 있을까?"
내 딸이 시댁 부모님을 문전박대한다면? 내 아들이 처가 부모님의 음식을 타박한다면?
내 사위가 내 딸 몰래 자기 부모님만 챙긴다면?
아마 등짝을 때려서라도 말렸을 겁니다. "사람 도리가 아니다"라고요.
내가 내 자식에게 바라지 않는 모습이라면, 나부터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부모님을 욕되게 하지 않는 길은, 내가 배우자의 부모님을 공평하게 모시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리고 예의는 반드시 돌아오는 거니까요.
공정한 어른이 되기를 꿈꾸며, 유다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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