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서 지워지는 사람들

: 가라앉는 고향과 기후 난민, 바다에 묻힌 국가의 애도

by 유다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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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였던 바다가 사신(死神)이 되어 문을 두드릴 때


남태평양의 에메랄드빛 바다. 누군가에게는 평생에 한 번쯤 가보고 싶은 지상 낙원이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이제 매일 밤 목을 조여 오는 거대한 사신(死神)이다.


만조 때가 되면 바닷물은 해변을 넘어 마당으로 밀려들고, 급기야 거실 한가운데까지 차오른다. 사람들은 익숙한 듯 가구 아래에 벽돌을 고여 놓고, 발목까지 차오른 바닷물 속에서 저녁을 먹는다. 마실 수 있는 식수원인 지하수는 이미 바닷물에 오염되어 짜디짠 소금물이 된 지 오래다. 사람들은 빗물을 받아 연명하고, 농작물은 소금기를 견디지 못해 까맣게 타 죽어 간다.


이것은 디스토피아를 그린 SF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2026년 지금,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섬나라 투발루(Tuvalu)와 키리바시(Kiribati), 그리고 인도양의 몰디브(Maldives)에서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현실이다.


우리가 무심코 배출한 온실가스가 빙하를 녹이고 해수면을 끌어올리는 동안, 그들은 수천 년간 대를 이어 살아온 조국이 서서히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것을 두 눈 뜨고 지켜보아야만 한다. 오늘의 비망록은 총성 없는 기후 전쟁에서 고향을 잃고, 세계 지도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기후 난민'들의 처절한 슬픔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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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디브


◆ 가장 적게 파괴한 자들이 치르는 가장 가혹한 형벌


이 비극이 유독 뼈아픈 이유는, 기후 변화가 낳은 이 거대한 재앙이 철저하게 '불평등'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투발루나 키리바시 같은 섬나라들이 전 세계 탄소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1%도 채 되지 않는다. 그들은 거대한 공장을 돌리지도 않았고, 숲을 불태우지도 않았으며, 그저 바다가 내어주는 물고기와 야자수 열매로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소박하게 살아왔을 뿐이다.


하지만 기후 재난의 청구서는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잔인하게 그들에게 날아들었다. 미국, 유럽, 그리고 한국과 같은 선진국들이 경제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뿜어낸 시꺼먼 매연의 대가를, 지구 반대편의 가장 무해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조국의 침수라는 형태로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선진국들의 오만한 탐욕이 만들어낸 '구조적 타살'이자 '기후 제국주의'의 결과물이다. 자신들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쓰고 수몰되어 가는 섬나라 사람들의 눈물 앞에서, 화석 연료로 쌓아 올린 우리의 화려한 문명은 도덕적 파산을 선고받은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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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디브


◆ 고향을 잃는다는 것, 영혼의 뿌리가 뽑히는 상실감


"국가가 가라앉는다면, 다른 나라로 이사 가면 되는 것 아닌가?"


안전한 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쉽게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인간에게서 '고향'과 '조국'을 빼앗는다는 것은 단순히 거주지를 옮기는 이사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영혼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거대한 폭력이다.


투발루 사람들에게 땅은 곧 정체성이다. 그들의 앞마당에는 대대로 조상들을 모신 무덤이 있다. 하지만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묘지가 물에 잠기고, 조상들의 유골이 파도에 휩쓸려 바다로 떠내려가는 끔찍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울면서 조상의 뼈를 다시 수습해 더 높은 지대로 옮기지만, 그마저도 10년 뒤면 물에 잠길 운명이다.


조국의 땅이 사라진다는 것은 수천 년을 이어온 그들 고유의 언어, 문화, 전통, 그리고 공동체의 기억이 한꺼번에 증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의 나라에 난민으로 얹혀살게 된 순간, 그들은 2등 시민으로 전락하며 자신들의 아름다웠던 문화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흙 한 줌, 나무 한 그루에 깃든 영혼의 안식처를 강제로 빼앗기는 그 지독한 상실감은 그 어떤 보상금으로도 치유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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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바시


◆ 법의 사각지대,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유령들'


더욱 참담한 현실은 이들이 직면한 캄캄한 국제법의 장벽이다. 현재의 국제법 체계에서 이들은 보호받을 권리조차 없는 완벽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1951년에 제정된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은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의견 등의 이유로 박해받는 사람만을 난민으로 인정한다. 즉, 총칼을 피해 도망친 사람은 난민으로 인정받아 국제사회의 보호를 받지만, 차오르는 바닷물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은 '기후 난민(Climate Refugees)'으로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공식적인 난민이 아니기에, 그 어떤 나라도 이들을 의무적으로 받아들일 책임이 없다. 국토가 완전히 바다에 잠겨 국가가 소멸하는 날, 투발루의 1만 2천 명 국민은 하루아침에 국적을 상실한 '무국적자'가 되어 바다 위를 떠돌아야 한다. 살기 위해 호주나 뉴질랜드의 문을 두드려도, 그들은 그저 '불법 이민자' 혹은 '경제적 이주민'으로 취급되어 입국을 거절당할 확률이 높다. 국가가 사라진 국민은, 국제 사회에서 철저히 투명 인간이자 유령 취급을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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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바시


◆ 존엄한 이주(Migration with Dignity) : 인류가 건네야 할 최소한의 구명조끼


그렇다면 조국을 잃어가는 이들을 위해 국제 사회는 어떤 복지와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가? 단순한 구호물자를 던져주는 시혜적 차원을 넘어, 그들의 '존엄(Dignity)'을 지켜줄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절실하다.


첫 번째는 키리바시 정부가 주창한 '존엄한 이주(Migration with Dignity)' 정책에 대한 국제적 지원이다.


키리바시의 전 대통령 아노테 통(Anote Tong)은 "우리는 난민(Refugee)이 아니라 존엄성을 가진 이주민이 되고 싶다"라고 선언했다. 조국이 잠기기 전에 국민들에게 간호, 목공, 배관 등 전문적인 직업 교육을 시켜, 이웃 나라인 호주나 뉴질랜드에 수동적인 난민으로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고 유능한 전문 인력'으로서 이주하겠다는 눈물겨운 자구책이다. 선진국들은 이민의 문턱을 낮추고, 이들의 직업 교육과 정착을 위한 '기후 연대 기금'을 대폭 지원해야 한다.


두 번째는 이른바 '디지털 국가(Digital Nation)'의 인정과 주권의 보장이다.


투발루 정부는 국토가 수몰되더라도 국가로서의 주권과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국가 전체를 메타버스(Metaverse) 공간에 복제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땅이 사라져도 투발루라는 국가의 법적 지위, 국민들의 여권과 권리를 국제 사회가 영구히 인정해 달라는 호소다. 국제법을 개정하여 '영토가 없어도 존재하는 국가'라는 새로운 개념을 수용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의 문화를 지켜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세 번째는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기금'의 실질적 가동이다.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한 선진국들이 책임을 지고 천문학적인 기금을 조성하여, 수몰 위기 국가들이 이주할 영토를 매입하거나 방파제를 쌓는 데 무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것은 동정심에서 우러나온 기부가 아니라,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마땅히 지급해야 할 '배상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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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발루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내일


투발루의 한 노인은 차오르는 바닷물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가라앉고 나면, 다음은 당신들 차례일 것입니다."


그의 말은 저주가 아니라 서늘한 예언이다. 빙하가 녹아내리는 속도는 우리의 예상을 비웃듯 나날이 빨라지고 있다. 투발루와 몰디브가 지도에서 지워지는 비극은 결코 남의 나라, 먼바다의 이야기가 아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마이애미의 호화로운 해변이, 방콕의 번화한 거리가, 그리고 부산의 해운대와 인천의 해안가가 똑같이 물에 잠길 것이다.


기후 난민은 특정 국가의 불운이 아니라, 탐욕스러운 질주를 멈추지 않는 인류 전체가 맞이하게 될 피할 수 없는 종착역이다.


물에 잠긴 조상의 무덤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섬나라 사람들의 눈물을 우리가 끝내 외면한다면, 자연은 결국 그 파도를 거침없이 밀어 올려 우리의 안일한 거실까지 삼켜버릴 것이다. 가라앉는 것은 투발루의 영토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인류의 양심과 도덕성 그 자체다.


우리는 지금, 다 함께 가라앉고 있는 거대한 배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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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동안, 제 발밑으로도

차가운 바닷물이 찰랑이며 차오르는 듯한 섬뜩한 환상에 시달렸습니다.

대를 이어 살아온 따뜻한 집과, 뛰어놀던 골목길과,

조상이 잠든 무덤이 시퍼런 바닷물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매일 두 눈으로 지켜봐야만 하는 그 끔찍한 절망감을 감히 어떤 단어로 위로할 수 있을까요.


가장 맑고 순수했던 자연의 사람들이, 우리의 편안함과 탐욕이 만들어낸 매연 때문에

조국을 잃고 영원한 유랑길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이 저를 너무나도 부끄럽고 참담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그들의 고향을 빼앗은 가해자입니다. '기후 난민'이라는 차가운 단어 뒤에 숨어있는

수만 명의 부서진 일상과 찢겨진 영혼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디 저 멀리 남태평양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이자

살려달라는 그들의 처절한 비명임을 가슴 깊이 새겨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바다에 잠겨가는 모든 잃어버린 고향들에 깊은 애도와 연대의 마음을 보냅니다.


Written By Yood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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