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붉은 피와 함께 추락한 여신의 슬픔
https://www.youtube.com/watch?v=ftoZ6uaZNqs
이마에 그려진 '제3의 눈', 그 뒤에 숨겨진 아이의 진짜 눈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 한편에 자리한 낡고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 '쿠마리 바할(Kumari Bahal)'. 매일 오후 정해진 시간이 되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이 사원 앞마당에 모여 숨을 죽인 채 2층의 작은 나무 창문을 올려다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려한 붉은색 전통 의상을 입고 묵직한 황금 장신구로 몸을 감싼 어린 소녀가 창가에 모습을 드러낸다. 눈꼬리를 관자놀이까지 길게 빼어 그린 짙은 아이라인, 이마 한가운데 선명하게 그려진 붉은색 '제3의 눈(Bhrumadhya)'. 소녀는 창밖의 수백 명을 내려다보면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다. 웃지도, 울지도, 눈을 깜빡이지도 않는 완벽하고도 서늘한 무표정. 사람들은 그 작은 아이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경배를 올린다.
이 소녀의 이름은 '쿠마리(Kumari)'. 힌두교의 처녀 신 '탈레주(Taleju)'가 인간의 육신으로 현현했다고 믿어지는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Living Goddess)'이다.
대통령과 총리조차 소녀의 발밑에 엎드려 축복을 구하는 이 기이하고도 신비로운 풍경은, 네팔을 상징하는 가장 매혹적인 문화유산으로 소비된다. 하지만 관광객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그 짧은 순간, 우리는 스스로에게 아주 뼈아픈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저 화려한 붉은 옷 속에 갇힌 아이는 지금 행복한가? 신이 되기 위해, 이 작은 아이는 '인간으로서의 삶' 중 무엇을 내어주어야만 했는가.
오늘의 비망록은 신성(神聖)이라는 화려한 감옥에 갇혀 한 번도 자신의 발로 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박제되어 버린, 살아있는 여신들의 숨겨진 비극과 그 지독한 눈물에 대한 기록이다.
◆ 여신의 조건, 서너 살 아이에게 가해지는 가혹하고 엽기적인 잣대
쿠마리는 네팔어로 '처녀'를 뜻한다. 힌두교와 불교가 결합한 독특한 신앙 체계 속에서, 네팔 사람들은 순결하고 흠 없는 어린 소녀의 몸에 여신이 깃든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쿠마리를 선발하는 과정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까다롭고, 현대의 인권 의식으로는 경악을 금치 못할 만큼 가혹하다.
후보에 오르는 아이들은 고작 3세에서 5세 사이의 핏덩이들이다. 네와르(Newar) 족의 샤키야(Shakya) 성씨를 가진 아이 중, 붓다를 상징하는 '32가지 신체적 완벽함(Battis Lakshanas)'을 갖추어야만 한다.
'사슴 같은 허벅지', '오리처럼 부드러운 목소리', '소의 속눈썹', '보리수나무처럼 완벽한 체형' 등 고대 경전에 나오는 기괴한 잣대를 어린아이의 몸에 들이댄다. 몸에 작은 흉터나 점이 있어서도 안 되고,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피를 흘린 적이 없어야 하며, 심지어 치아가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가장 잔혹한 통과의례는 육체적 조건 너머에 있다. 바로 '공포를 이겨내는 시험'이다.
심사관들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잘린 물소와 양의 머리가 피를 뚝뚝 흘리며 널려 있는 제단 한가운데로 어린아이를 홀로 밀어 넣는다. 기괴한 탈을 쓴 남자들이 악마의 소리를 내며 아이를 위협한다. 이 지옥 같은 공포 속에서 울음을 터뜨리거나 비명을 지르는 아이는 탈락한다. 그 끔찍한 시각적, 청각적 폭력 앞에서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초연한 아이만이 '여신'의 자격을 얻는다.
이것을 과연 신성함의 증명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극도의 공포 앞에서 아이가 얼어붙어 버린 해리 상태, 즉 심리적 마비 증상을 어른들은 '여신의 현현'이라며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그렇게 세 살배기 아이는 부모의 품에서 강제로 떼어내져,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사원(쿠마리 바할)의 캄캄한 밀실로 영원한 유배를 떠나게 된다.
◆ 갇힌 신성(神聖), 평생 땅을 밟지 못하는 박제된 새
쿠마리로 선택되는 순간, 아이의 모든 일상은 철저히 통제된다. 소녀는 더 이상 평범한 인간이 아니기에, 부모조차 아이를 향해 절을 해야 하며 함부로 만지거나 안아줄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금기는 "쿠마리의 발은 결코 부정한 땅에 닿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신은 사원 밖으로 나갈 일이 1년에 손에 꼽히는 종교 축제 때뿐인데, 그때도 황금 가마를 타거나 성인 남자의 품에 안겨 이동해야 한다. 스스로의 두 발로 대지를 딛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놀고, 넘어지며 세상을 배워야 할 유년 시절의 특권이 완벽하게 거세당하는 것이다.
감정 표현 역시 엄격하게 금지된다. 쿠마리의 감정 변화는 곧 국가나 개인의 길흉화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순례자 앞에서 쿠마리가 갑자기 웃으면 그것은 기도가 거절되었거나 심각한 질병이 찾아올 불길한 징조로 해석된다. 쿠마리가 눈물을 흘리면 죽음이 임박했다는 뜻이고,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면 막대한 재앙이 닥칠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소녀는 화가 나도 소리칠 수 없고, 슬퍼도 울 수 없으며, 기뻐도 미소 지을 수 없다. 넘어져 무릎이 깨질 수도 없기에 찰과상 한 번 입어보지 못한다. 친구들과 인형을 안고 다투는 대신, 무거운 금관을 쓰고 억눌린 무표정으로 하루 종일 낯선 어른들의 절을 받아야 한다.
살아 숨 쉬는 아이를 데려다 놓고, 감정과 본능을 모조리 도려내어 '호흡하는 나무토막'이나 '금박을 입힌 박제된 새'로 만들어 버리는 것. 그것이 그들이 자랑하는 살아있는 여신의 진실이다.
◆ 첫 생혈(生血)의 저주, 하루아침에 대지로 내동댕이쳐진 여신
하지만 이 기형적인 신성함에도 끝이 있다. 여신의 영혼이 소녀의 몸을 떠나는 순간, 즉 아이의 몸에서 '피'가 나는 순간이다.
초경을 시작하여 생리혈을 비추거나, 혹은 실수로 넘어지거나 긁혀서 작은 상처가 나 피를 흘리는 순간, 여신 '탈레주'는 부정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 몸을 떠난다고 믿는다. 어제까지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발밑에 엎드려 절을 하던 신성한 존재는, 피 한 방울에 의해 그 즉시 '불길하고 평범한 계집아이'로 전락한다.
그동안 입고 있던 화려한 붉은 옷과 금장신구는 모두 압수되고, 쫓기듯 사원 뒷문으로 나와 가난한 본래의 가족에게로 돌려보내진다. 성대한 퇴임식 따위는 없다. 단 한 번도 자신의 발로 걸어본 적 없는 낯선 카트만두의 흙먼지 날리는 거리 위에, 어제까지 신이었던 소녀는 짐짝처럼 내동댕이쳐진다.
자연스러운 여성으로의 성장이, 이들에게는 신성함의 상실이자 종교적 추방의 이유가 된다.
인간의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가장 숭고한 준비 과정인 초경이 '부정함'으로 낙인찍혀 쫓겨나는 이 모순적인 상황은, 쿠마리 제도가 철저히 가부장적인 사회의 '순결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그들은 여신을 섬긴 것이 아니라, 아직 성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처녀의 흠 없는 육체'를 철저히 소비하고 버린 것뿐이다.
◆ 신의 허울을 벗은 뒤, 남겨진 '인간'의 지독한 형벌
진짜 비극은 사원 문을 나선 직후부터 시작된다. '전직 쿠마리'라는 꼬리표는 축복이 아니라 평생을 따라다니는 무거운 저주다.
사찰의 좁은 방에 갇혀 10여 년을 숭배만 받아온 소녀는 기초적인 사회화 과정을 전혀 거치지 못했다. 또래와 대화하는 법, 길을 건너는 법, 물건을 사는 법조차 모른다. 두 발로 걷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아 걸음걸이가 기형적인 경우도 많다.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도 수두룩하다. 최근에는 사원 내에 가정교사를 두어 교육을 시킨다고는 하지만, 사회와 철저히 단절된 채 배우는 지식은 아이를 현실의 삶에 적응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더욱 끔찍한 것은 미신이 낳은 사회적 낙인이다. 네팔 사회에는 "전직 쿠마리와 결혼하는 남자는 6개월 안에 피를 토하고 죽는다"는 무시무시한 미신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신을 모셨던 기운이 너무 강해 평범한 남자가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은퇴한 쿠마리들은 평범한 연애나 결혼을 꿈꾸지 못한 채, 사람들의 기피와 수군거림 속에서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살아야 했다. 신으로서 누렸던 부와 명예는 사원에 귀속될 뿐, 아이의 손에 쥐어지는 것은 정부가 주는 쥐꼬리만 한 연금과 평생을 안고 가야 할 트라우마뿐이다.
한 인간의 자아를 무참히 지워버리고 맹목적인 숭배의 도구로 사용하다가, 쓸모가 다하면 사회의 가장 취약한 가장자리로 밀어버리는 시스템. 이것을 국가가 보호해야 할 전통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가?
◆ 전통이라는 이름의 폭력,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소비하는가
최근 몇 년 사이, 네팔 내부에서도 인권 단체들을 중심으로 쿠마리 제도를 아동 학대로 규정하고 철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08년 네팔 대법원은 "쿠마리도 교육과 이동의 자유, 기본적 인권을 누려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수백 년을 이어온 이 끔찍한 관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종교적 믿음이라는 방패 뒤에, '관광 수입'이라는 거대한 자본주의의 탐욕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국적인 문화를 소비하는 스스로의 시선을 점검해야 한다.
우리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나 여행 안내서에서 '신비의 나라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이라는 문구에 매혹되어 카트만두행 비행기표를 끊고 사원 앞으로 몰려갈 때, 우리는 의도치 않게 이 아동 학대의 견고한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공범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지불한 달러가 아이의 창문을 여는 관람료가 되고, 우리가 터뜨린 카메라 플래시가 아이의 두 발을 영원히 허공에 묶어두는 밧줄이 되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다름을 존중하는 문화 상대주의'라는 그럴듯한 변명은, 아동의 기본권과 보편적 인권이 유린되는 현장 앞에서는 결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붉은 베일을 찢고, 마침내 두 발로 땅을 딛는 날까지
사원 2층의 어두운 창문 틈으로 무표정하게 세상을 내려다보던 그 아이의 눈동자가 잊히지 않는다. 눈물조차 마음대로 흘릴 수 없도록 강요받은 신성의 감옥.
그 아이의 진짜 소원은 세상의 평화나 힌두신의 축복 따위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엄마의 품에 안겨 마음껏 어리광을 부리고, 흙투성이가 되도록 맨발로 골목길을 뛰어다니고, 넘어져서 까진 무릎에 연고를 바르며 엉엉 울어보는 것. 평범한 아이들이 누리는 그 사소하고 빛나는 일상만이 그 붉은 옷을 입은 소녀의 유일한 기도였을지도 모른다.
전통이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서 한 아이의 영혼을 제물로 바치는 사회는 결코 신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
여신이 아닌 인간으로 돌아온 그녀들이, 미신과 편견의 장벽을 부수고 당당히 사회로 걸어 나올 수 있기를. 무엇보다 사원의 캄캄한 밀실에 갇혀 눈동자를 잃어가는 새로운 쿠마리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기를.
신이기를 거부하고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으로 살 권리를 되찾는 것. 그것이 그 작은 아이들이 세상에 내려야 할 진짜 기적이다. 더 이상 소녀들의 발목이 허공에 묶이지 않고, 기꺼이 흙먼지 묻은 땅을 단단히 디딜 수 있는 눈부신 아침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단 한 번도 세상 밖으로 흐르지 못했을 그 아이들의 투명한 눈물이 제 가슴에 무겁게 고여 찰랑거렸습니다.
신의 자리라는 것은 참으로 기만적입니다.
사람들은 아이의 발밑에 엎드려 자신의 안위를 빌었지만,
정작 아이가 숨 막혀 죽어가는 고통 앞에서는 철저히 방관자였습니다.
붉은 생리혈이 묻어났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내쳐지는 쿠마리의 운명은,
순결이라는 프레임으로 여성을 숭배하거나 혹은 짓밟아버리는
가장 잔인하고 극단적인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우리는 신비로운 이국 문화라는 포장지를 벗겨내고,
그 안에서 피 흘리고 있는 '보편적인 인권'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누군가의 잃어버린 유년 시절을 대가로 유지되는 전통은
이제 역사의 박물관으로 고이 보내주어야 마땅합니다.
살아있는 여신이 아니라,
마음껏 웃고, 마음껏 울고, 마음껏 다칠 수 있는
그저 살아 숨 쉬는 '온전한 한 명의 소녀'로서
네팔의 모든 아이들이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깊이 기도합니다.
Written By Yoodaram
https://litt.ly/yoodaram_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