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AI, 그리고 중년의 단상

세계질서 재편과 AI, 그리고 나

by 이대팔


안온했던 세계의 균열

요즘은 뉴스를 보는 일 자체가 고역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어렵게 쌓아 올린

보편적 규범과 국제 사회의 약속들이, 생각보다

허무하게 무너지는 장면을 매일 목도한다.


강대국의 자국 우선주의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어제의 동맹은 오늘의 적이 되고,
합리적 토론보다는 힘의 논리가 앞선다.


경제와 경영, 역사를 공부하며
‘세상은 결국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할 것’이라

믿어왔던 내 신념이 과연 계속될 것인가.

한 치 앞도 모를 세계재편의 시대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세계 질서의 변화가
마치 내가 서 있던 삶의 기반이 함께 갈라지는

소리처럼 위태롭게 들린다.


25년의 시간이 부정당하는 기분

불안은 바깥에서만 오지 않는다.
생활권으로는 AI라는 해일이 몰려온다.


25년.
강산이 두 번 반 변하는 시간 동안
나는 치열하게 일했고, 경험을 쌓았고,
나름의 통찰을 만들어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속도는
그 시간들을 너무도 쉽게
‘구식의 것’으로 밀어낸다.


90년대 말의 IT광풍도,

2007년 스마트폰의 기술변화와도 다른,

지금의 AI는 더 근원적인 변화와

너무 빠른 속도에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업무에 AI를 활용해 보겠다고
매일 밤 모니터 앞에 앉아 씨름하지만,
문과 출신의 한계인지
중년의 스킬 부족인지
진도는 더디기만 하다.


텍스트 몇 줄로
내가 며칠 밤을 새워 만들던 결과물을
순식간에 뽑아내는 기계를 마주할 때면,
지난 25년의 세월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 든다.


알고리즘이 부추기는 조급함

마음을 달래려 집어 든 스마트폰은
오히려 더 가혹하다.

SNS 알고리즘은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
AI로 사업을 해서 성공 가도를 달린다는

서사만을 내 앞에 들이민다.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도 모를 이야기들.


AI전문가, 대학교수, 뇌과학자의

유튜브 강연을 보며 AI시대를 위해

준비하라는 강연주제보다 선뜻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나만의 속내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은 모두 빛의 속도로 달려 나가는데,
나만 낡은 지도를 든 채, 길을 잃고 갈림길에

멈춰 선 아이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내 준비는 과연 맞는 걸까.”

“내 아이들은 어떻게 뭘 준비시켜야 하나.”


정답 없는 질문들이 밤의 적막 속에서
끝없이 맴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하는 이유

하지만 알고 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불안이
나만의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술은 지식을 대체할 수 있지만,

삶의 궤적이 만들어낸 맥락과

세상을 바라보는 인문학적 시선까지
대체할 수는 없다고 믿고 싶다.


비록 AI 스킬은 조금 느릴지라도,
기계가 담아내지 못하는
인간의 고뇌와 역사적 흐름을 읽는 눈은
여전히 나만의 무기라 믿고 싶다.


거대한 AI의 변화속에

인간다움, 인문학, 사람만이

가능한 감성과 고유특성을 더욱

고양하여야 한다는, 어느 학자의

의견에 공감이 들면서도 불안함은

좀체 가시지 않는다.


오늘 밤,
이 어두운 글감을 부여잡고

이 불안을 기록함으로써
시대변화에 휩쓸리는 객체가 아니라
당당히 삶을 주도하는 주체로
다시 설 수 있다는 믿음을 놓지 않고

한걸음 한걸을 나아가보려 한다.


소용돌이같은 시대의 밤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가 느끼는 이 괴로움은
우리가 멈춰 있기 때문이 아니라,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기 길을 찾고 있다는
가장 뜨거운 증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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