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무거운 책임만이 가득해지다
부도 사고 이후, 김 과장은 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달라진 게 아니었다.
원래 그랬는데, 더 이상 숨기지 않게 됐다.
1차 부도 통보가 왔던 그날, 본사 CFO까지
뛰어내려와 회의실이 발칵 뒤집혔을 때,
그 사건의 한가운데에 있던 사람이 바로
김 과장이었다.
그 이후로 팀내 그의 입지는 사실상 끝났다.
팀장님도 임원도 그를 믿지 않았다.
본인도 아마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이후에도 그는 회사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히 다녔다.
독수리 타법으로 키보드를 치다가 눈치를
보고는 지뢰찾기 게임을 켜는 그 패턴 그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음이 찢어졌다
매월말일경, 김 과장은 업체에 지급할 어음과
자금보고자료를 들고 서울 본사로 올라갔다.
자금총괄 임원께 어음에 도장을 받고 자금결재
승인을 받으러 가는 날이었다.
본사 승인을 오전중에 받아 점심전에 가져와야
오후에 오는 협력사분들께 대금지급과 어음
지급을 하는 패턴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오후가 돼서 소문이 돌아 내 귀에도 들려왔다.
내용인즉, 오류투성이의 자료와 일부 어음에
오타가 있었고, 거기다 술 냄새를 풍기며
와이셔츠도 며칠을 갈아입지 않은 채였고
오류에 대해 제대로 답변도 못했다는 것이다.
임원분은 말이 없으셨다고 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매번 혼도 내고 달래기도 했는데, 이번엔
더구나 술도 깨지 않아 술냄새까지 풍기며
결재를 받으러 온 김 과장에게 화도 내지 않고
그냥 어음을 두 손으로 들어 올리더니,
천천히 찢으셨다고.
바닥에 떨어진 어음조각을 하나하나 주섬주섬
주어서 다 모은 김 과장이 서류를 들고 회사로
갔다는 내용이었다.
어음용지도 돈과 유사해서 분실되면 법원에
분실신고를 내고 (제권)판결을 받아야 하는
중요한 자료인 것은 알았던 김 과장이 찢긴
용지를 조각조각 바닥에서 주워온 것이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어음 결재가 안 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대금결제를 받아야 하는 업체들의 전화와
원성이 하루종일 이어질 것을, 우리 팀에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김과장이었다.
논두렁 사건
그즈음 또 다른 일이 있었다.
김 과장이 폐차직전의 중고 경차를 한 대 샀다.
초보 1종 면허였다.
어느 날 퇴근 후 회사 주변을 혼자 시험
운전하다가, 회사 앞 언덕길을 오르던 중에
시동이 꺼졌다. 클러치 조작이 미숙한 초보
면허자들이 자주 겪는 일인데, 시동이 꺼지면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안 되는데, 김 과장은
시동이 꺼지자 당황했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자 시동이 꺼진 차는 언덕에서 그대로 뒤로
밀리기 시작했고, 멈춘 곳은 언덕 아래
논두렁이었다.
회사 언덕아래는 차들이 다니는 국도였는데
다행히 차들이 없어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고 논의 진흙 속에 처박혔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가보니 차 안에 김 과장이
멀뚱히 앉아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고 했다.
사무실에서 그 이야기가 돌았을 때,
다들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런데 왜인지 오래 웃을 수가 없었다.
웃음 뒤에 남는 게 있었다.
저 사람, 괜찮은 건가.
마마보이
어느 날 아침 일찍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거기 회사 맞죠? 나 김 과장 엄마인데요.
왜 우리 아들 급여통장을 회사에서 마음대로
바꾼 거예요?" 목소리가 상당히 단호했다.
나는 당황하지 않으려 담담하게 답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회사에서 직원 본인
외에는 급여통장을 변경할 수 없습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래요?"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사실 급여통장 등록은 김 과장 업무였다.
대여섯 시간쯤 지난 오후 늦은 시간.
문이 열리더니 김 과장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사무실로 들어오셨다.
쭉 둘러 보시더니 김 과장을 찾아내셨다.
그리고 아무 말없이 그의 귀를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가셨다. 김 과장은 끌려가면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게 그의 마지막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랬다.
부도 사고 이후 본인 실책에 마음고생을 하던
김 과장은 술 소비가 늘어가기 시작했고,
더불어 카드값이 쌓이기 시작했다.
카드값을 해결하기 위해 엄마가 관리하던 본인
급여통장을 다른 계좌로 바꿔놓았다.
집에서 어머니께서 물으니 둘러대며 회사에서
임의로 본인통장을 바꿨다고 거짓말을 했다.
거짓으로 답변을 하고는 생활비를 가로채다가
어머니에게 들켰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마마보이였고, 어머니가 그동안
통장과 월급을 관리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부도 사고도, 서울에서 어음이 찢어진 것도,
논두렁에 처박힌 경차도.
전부 이어진 이야기였다.
1인 2역
김 과장이 그렇게 황당하게 퇴사를 해버린 뒤,
회사는 김 과장 자리를 채우지 않았다.
옆 팀 기획과장님이 겸직 발령을 받았다.
회사경비를 절감한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기획과장님도 일이 바쁜 분이셨다.
겸직이라는 건 사실상 서류상 형식이었고,
실무의 대부분은 조용히 내 쪽으로 쏟아져
오기 시작했다.
자금보고, 회계마감, 관세환급, 서울본사
보고, 월 부가세 영세율조기환급신청,
사업계획에, 거기에 그룹사 SAP 고도화
TFT까지 차출됐다.
대리 직급이었다.
통상 사원에서 대리로 승진에 4년이 걸리는데,
나는 2년 사원후 3년 차 대리승진을 조기에
하게 된 특이 케이스였지만, 3년 차인데
사수인 과장업무까지 1인 2역을 하게 되었다.
월급은 그대로 대리 월급이었다.
"회사가 매출도 안 늘어나고 이익도 줄어서
당분간 이렇게 운영하겠습니다."
그 말 한마디로 상황은 정리됐다.
당분간이 얼마나 될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아침에 출근하면 마감 자료를 정리하고,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TFT 에 들어갔다가,
저녁에는 밀린 서류를 검토하고 부서요청에
대응하고 밤늦게 본사 보고 자료를 만들었다.
야근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떤 날은 본업 업무를 하다 보니 미뤄놨던
관세환급 제출기한이 임박해 저녁 늦게 시작해
기한을 맞추기 위해 새벽에 퇴근하기도 했다.
권한은 없었다.
책임은 있었다.
대리 월급을 받으며 과장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버텼다.
이유는 솔직히 단순했다.
일이 쏟아질수록 배우는 것도 많았다.
ERP TFT도 대부분 팀장급, 차석급이 참석하는
자리였는데 대리급은 내가 유일하게 참여하면서
팀장급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약 50억 원짜리 SAP 프로그램도입 테스트도
하고, 자금, 회계, 세무, 관세를 동시에 굴리며
재경 업무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몸으로
익혀가고 있었고 몸은 힘들었지만 과장급이상
팀장급의 업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물론, 당시에는 그게 성장인지 착취인지
구분할 여유나 사리판단의 개념도 없었다.
그냥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전부였다.
지금의 나는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린다.
대리 월급으로 과장 일까지 했던 그 시간이
억울했는지, 아니면 감사한 시간이었는지.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CFO 실전노트 – 한 줄 정리
성장은 준비된 사람에게 오는 게 아니라,
버텨낸 사람에게 쌓인다.
단, 버티는 것과 착취당하는 것은 반드시
스스로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