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있으면 불편한 것
'고슴도치의 딜레마'에 관한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를 아끼기 위해 가까이 붙으면 가시로 상대를 찌르고 만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서로를 느끼지도 못한다. 그래서 고슴도치는 가시의 길이보다는 조금 더 길게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인간관계에서 서로에게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이야기다. 변기와 세면대 사이에도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변기와 세면대도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불편함이 사라지는 걸까. 평소에 인식하지 못하던 것을 유난히 좁은 공간에서 인식했을 뿐이다. 사실 가정이나 회사나 상수도의 공급라인은 동일하다. 수도관이 연결되어 최종적으로 나오는 곳이 부엌의 싱크대가 될 수도 있고, 화장실의 변기가 될 수도 있다. 정수기에 연결된 경우엔 그 물을 마신다.
상수도라는 본질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변기와 세면대라는 현상을 바라본다. 결국엔 사물을 보는 마음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일까. 본질을 인정한다고 해서 좌변기에 있는 물로 씻을 수 있을까. 예전에 봤던 시트콤 장면에서 수세식 변기가 없던 시골에서 살던 남자가 신식 화장실 변기에 물이 담겨있는 것을 보고 누군가 자신을 위해서 물을 받아 놓았다며 머리를 감는 장면이 나온다. 물을 담고 있는 변기와 세숫대야를 구분할 수 없는 사람에겐 불편함이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위해서 물을 받아둔 것에 감사함이 생기는 걸까. 같은 물이라도 담는 그릇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은 인식에 관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때에만 성립이 가능하다.
자주 다니는 수영장에서는 단 한 번의 눈병이 걸리지 않아도 딱 한 번 간 야외 수영장에서는 눈병이 걸릴 수 있다. 지독한 아폴로 눈병으로 고생한 후 다시 야외 수영장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세면대에서 양치를 하는 마음은 물의 종류나 그것을 담는 그릇의 종류도 아닌 깨끗하다는 믿음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평소에 아무런 문제 없이 지내던 것에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사물이나 사람 그 자체라기보다는 가까울 때만 인식할 수 있는 불편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