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후 다시 공원에는 활기가 넘쳐흘렀다. 잎은 물기를 머금고 더욱 싱그러워졌고, 잔디도 초록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아침이면 노인들이 모여들었고, 과자를 주던 노인도 다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두줄이와 한줄이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부쩍 둘 사이가 가까워진 듯 보였다. 맑은 하늘에서 흑갈색 비둘기 한 마리가 근사한 모습으로 착지했다. 나이가 제법 많은 흑갈색 비둘기는 육 년 전 모험을 떠난 발자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좀처럼 다른 비둘기와 어울리지 않는 도비아도 나무에서 내려와 발자국 옆으로 갔다. 발자국은 날렵한 몸매로 특히 날개가 반짝거렸다. 적갈색 눈은 공원의 다른 비둘기와 다른 모습이었다. 도비아의 눈이 그나마 비슷한 편이었다. 발자국은 공원의 비둘기들을 돌아봤다.
“다들 여전하시군!”
주변으로 몰려든 비둘기들을 보며 발자국이 말했다. 대부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비둘기 중 붉은 눈과 갈색 털을 가진 도비아에게 시선을 두었다.
“도비아?”
발자국은 도비아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네. 제가 도비 아에요.”
도비아가 대답하자 발자국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모인 비둘기들은 발자국이 갑자기 왜 우는지 알 수 없었다. 모두가 궁금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누구도 묻지 않고 발자국의 말을 기다렸다. 발자국은 도비아에게 다가가서 날개로 감싸 안았다. 그렇게 서서 한참을 울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오, 도비아. 내 소중한 친구의 아들이여. 이렇게 멋지게 자랐구나.”
도비아는 발자국을 응시했다. 분명히 자신을 알고 있고,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실이 도비아의 눈을 사로잡았다. 마음 둘 곳 없었던 도비아는 아버지의 친구를 만나자 드디어 이 세상과의 접점을 만난 기분이었다.
“제 아버지를 아시나요?”
고개를 흔들어 눈물을 털어낸 후 발자국이 말을 이었다.
“알다마다. 네 아버지는 나의 가장 친하고 소중한 친구였단다.”
도비아의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발자국의 눈에 다시 눈물이 글썽거렸다. 도비아는 발자국과 아버지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참기 힘들었다.
“어떤 일이 있었나요?”
깊게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발자국이 들려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공원의 삶에 지루함을 느낀 도비아의 아버지는 발자국에게 함께 모험을 떠나자고 했다. 공원 삶이 약간 무료하긴 했지만, 발자국은 그렇다고 크게 불만도 없었다. 하지만 도바아의 아버지는 멋진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 전선 위나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있다가 늙어 죽는 건 정말 싫어했다. 하지만 발자국은 다른 곳은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모험을 반대했다. 망설이는 발자국에게 도비아 아버지는 함께 가지 않으면 자기 혼자라도 떠날 거라고 말했다. 발자국은 어떤 말로도 도비아의 아버지를 설득할 수 없었다. 분명 모험 병에 걸린 것으로 보였고, 그 병은 모험하지 않고는 절대 나을 수 없는 병이었다.
“외국으로 가자!”
도비아 아버지가 소리쳤다. 주위의 참새들이 도비아 아버지의 말을 따라 했다.
“외국으로 가자! 외국으로 가자! 외국으로 가자!”
결국 모험을 떠나기로 하고 사흘간의 준비를 마친 후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무시무시한 매가 날아다니는 곳을 피해 날았고, 산속에 머무르며 먹이를 구했다. 산마다 각종 열매가 열려 있었고, 열매가 없을 땐 땅 위의 벌레를 잡아먹으며 다녔다. 처음으로 바다를 본 순간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바다 위를 날아서 건너기엔 자신이 없었다. 육지로 가는 길을 묻기 위해 갈매기에게 말을 걸었다가 시비가 붙어서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도비아 아버지가 갈매기를 제압하고 육지를 통해서 가는 길을 들었다. 산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드문드문 사람이 사는 마을과 그 옆에는 논이나 밭도 있었다. 새로운 것을 볼 때마다 신기했고, 새로운 열매를 먹을 때마다 행복했다. 사는 곳과 생김새는 조금 달랐지만, 열매를 먹는 것과 벌레를 잡는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는 곳마다 조심해야 할 사항도 달랐다. 어떤 곳은 밤에 활동하는 올빼미를 조심해야 했고, 어떤 곳에서는 커다란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독수리를 조심해야 했다. 땅 위에 다니는 맹수도 방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으므로 잘 피해 다녀야 했다. 특히 안개가 자욱한 날은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위험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을 이야기하려면 며칠 밤을 새워도 부족할 테니 도바아, 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마.”
발자국은 물을 마시고 크게 한숨을 내쉰 후 다시 말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