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4화

by 유병천

삼 년 동안 여행한 끝에 도착한 곳은 각종 동물이 엄청나게 많이 사는 곳이었다. 몸집이 커다란 코끼리, 들소, 염소, 곰, 판다, 담비, 족제비, 수달, 사향고양이, 하이에나, 늑대, 몽구스, 사슴, 영양 등 살고 있었다. 곳곳에 뱀도 많아서 도무지 잠도 편하게 잘 수 없는 곳이었다. 하늘 위에는 독수리, 매, 물수리가 위협하고, 땅 위에서 뱀이나 맹수들이 위협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 정도였다. 발자국과 도비아 아버지는 지쳤고, 음식도 풍족하게 먹지 못했다. 심지어 잠을 잘 때는 서로가 번갈아 가며 자야 했다. 자는 동안 어떤 위험이 다가올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발자국은 여행을 나선 후 처음으로 태어나고 자란 공원이 생각났다. 도비아 아버지도 역시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중도에 포기할 수 없었다. 발자국이 도비아 아버지에게 물었다.

“넌 무엇 때문에 모험을 하는 거야?”

도비아 아버지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도시의 공원 생활이 싫었고, 무작정 떠나고 싶었다. 새로운 곳에 가면 새로운 희망이 있을 줄 알았다. 모험만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도비아 아버지는 스스로 모험을 왜 하고 싶은지 질문한 적이 없었다. 지친 상황에서 발자국의 질문은 당황스러웠다. 크고 작은 위기를 모면하고 여기까지 왔지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커다란 위험이 있을 것이라곤 전혀 알지 못했다. 두고 온 도비아와 아내의 얼굴도 생각났다. 함께 모험을 떠나자고 한 발자국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돌이킬 수 없었다.

“발자국, 난 돌아가서 도비아에게 우리의 모험 이야기를 들려줄 거야.”

발자국도 더는 묻지 않았다. 설렘 가득한 가슴으로 떠났고, 위험한 만큼 즐거움도 많았다. 무엇보다 모험 이야기를 도비아에게 들려준다는 것은 근사한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도비아 아버지가 도비아에게 모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말이 유언이 될 줄 발자국은 꿈에도 몰랐다. 너무도 지친 어느 날 물가에 수많은 새가 있는 것을 봤다. 긴 부리에 축 늘어진 턱을 가진 덩치가 큰 새, 청둥오리, 거위, 그리고 많은 비둘기가 있었다. 모처럼 안전한 곳을 찾은 것 같아서 기뻤다. 도비아 아버지와 발자국은 비둘기 사이로 내려갔다. 얌전하게 앉아 있는 커다란 새는 별로 위험하게 생기지 않았다. 청둥오리는 물 위로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고, 거위는 긴 목을 내밀고 바쁘게 걸어 다녔다. 비둘기들은 땅에 있는 모이를 쪼거나 혹은 물을 마시며 있었다. 도비아 아버지도 목이 말랐다. 급하게 물 쪽으로 달려갔다. 그때였다. 얌전해 보이던 커다란 새가 커다란 부리를 벌리고 갑자기 도비아 아버지를 한입에 삼켰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발자국은 눈앞에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었다. 커다란 새의 복주머니처럼 생긴 턱에서 도비아 아버지가 발버둥 치는 것이 보였다. 그 새는 턱을 흔들며 도비아 아버지가 탈출하지 못하게 더욱 부리를 굳게 닫았다. 축 늘어진 턱에 거친 움직임이 보였다. 발자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도비아 아버지를 삼킨 커다란 새 옆에 같은 새 한 마리가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는 눈치였다. 발자국은 발을 동동 구르며 힘껏 소리쳤다.

“꾸우륵! 꾸르륵! 살려주세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도비아 아버지를 삼킨 커다란 새는 아랑곳하지 않고 턱살을 흔들며 가끔 고개를 들었다. 주위의 다른 새들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듯 가만히 있었다. 발자국은 그곳에 있던 다른 비둘기에게 다가가서 소리쳤다.

“제발 도와줘! 내 소중한 친구야! 너에게도 친구가 있잖아! 제발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는지 알려줘! 제발!”

“사다새 옆으로 간 게 잘못한 거야. 착해 보이는 얼굴에 속은 저 녀석이 잘못한 거라고.”

발자국은 도비아 아버지를 삼킨 녀석이 사다새라는 것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말하는 동안에도 커다란 사다새는 턱 살을 거칠게 흔들었다. 도비아 아버지의 날갯짓은 멈추지 않았지만, 왠지 전보다 약해진 느낌이었다. 발자국은 온 힘을 다하여 소리쳤다.

“도비아! 도비아를 생각하라고!”

발자국의 목소리가 닿았는지 사다새의 입이 살짝 열리면서 날개가 보였다. 발자국은 계속해서 힘내라고 외쳤다. 그러나 사다새는 부리를 하늘 쪽으로 향하게 하고 더욱 세차게 턱살을 흔들었다. 턱살 속에서 움직임이 줄어들더니 이내 사다새가 바닥으로 철퍼덕하고 주저앉았다. 발자국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 하고 생각했다.

“꾸르륵! 도비아! 제발! 도비아를 잊지 말라고!”

사다새는 발자국이 소리 지르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아무런 일도 없는 듯 앉아 있었다. 턱 주머니 속에 도비아 아버지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다새의 목구멍 위에 분명하게 도비아 아버지가 있었다. 볼록 튀어나온 부위의 크기가 딱 도비아 아버지의 몸집 크기만 했다. 발자국은 다시 한번 소리쳤다.

“도비아! 정신 차리라고! 너의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사다새의 목에서 작은 움직임이 보였다. 턱살 쪽에도 날갯짓처럼 보이는 씰룩거림이 보였다. 발자국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계속해서 도비아 아버지를 불렀다. 이내 사다새의 부리가 열리고 다시 날개가 보였다.

“그래! 할 수 있어! 힘내라고! 힘을 내!”

발자국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응원이 전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날개가 조금 더 보일 때마다 발자국은 더 크게 소리쳤다. 자신의 턱살 안에 강한 몸부림을 치는 비둘기가 있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 있어 보이는 사다새의 표정은 무서웠다. 목이 쉬었는지 발자국도 더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발자국은 포기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도비아 아버지를 응원했다. 사다새의 부리가 조금 더 벌어지는 것 같았다. 사다새의 부리는 점점 하늘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비아 아버지의 한쪽 날개가 거의 보일 때쯤 사다새는 다시 한번 부리를 굳게 닫으며 축 처진 턱살을 흔들었다. 반쯤 보였던 날개가 사라졌다. 사다새는 목과 턱살을 심하게 흔들었다. 하늘을 향해 부리를 치켜들고 강하게 흔들었다.

“안 돼!”

발자국이 절규하며 소리쳤지만 소중한 친구가 사다새의 목구멍을 넘어가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정신이 혼미해져서 발자국은 사다새에게 달려들려고 땅을 박찼다. 그때 옆에 있던 현지 비둘기가 발자국을 막았다.

“멈춰! 저놈 옆에 널 잡아먹으려 기다리는 다른 사다새가 보이지 않아?”

“놔줘!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제발 놔줘!”

“아까운 목숨을 버리지 말라고! 정신 차리고 빨리 네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의 비둘기는 발자국보다 힘이 셌다. 발자국을 꼼짝하지 못하게 하더니 다시 한번 소리쳤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여기까지가 발자국이 들려준 이야기였다. 도비아는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모험가였으며 다른 세계를 여행하다가 비참하게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우리의 모험은 이렇게 끝났단다.”

돌아오는 길에도 많이 위험했지만, 곳곳에 사귀어둔 친구들 덕분에 무사히 올 수 있었다고 했다. 모험을 마치고 돌아온 발자국의 모습을 다시 살펴보니 피곤한 기색이 있었다. 하지만 매끄러운 날개와 온몸에 군살 하나 없어 보였다. 발자국은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았다. 그리고 도비아를 보며 말했다.

“도비아, 난 산속에 들어갈 예정이란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오너라.”

발자국은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날아가는 속도가 다른 비둘기에 비해서 상당히 빠른 느낌이었다. 작은 점이 되더니 이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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