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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Oct 13. 2019

그건 너희 잘못이 아니야

대입이라는 관문

 초중고등학교를 지나는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1998년 대한민국을 덮친 IMF 금융위기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줬다. 특히 직업에 관한 시각을 바꾸어 놨고, 평생직장이란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사회는 불안감이 증폭되었고 안정적인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 자본주의에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돈을 추구하게 되었고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유명인의 성공신화를 이야기하며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목표를 자식에게 바라며 살아가는 사람도 늘었다.


 '평생직장은 없다'는 말로 좋은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전문가가 되길 희망했다. 전문가가 되려면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좋은 대학에 가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며 학원에 보냈다. 초등학생 때부터 여러 개의 학원에 다녀야 했고, 적성에 맞지도 않는 공부를 한답시고 작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게 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위해 뭔가 도움을 주려고 해도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과학고, 특목고, 외국어 고등학교, 자사고 등에 보낼 준비를 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되면 농어촌 전형을 노렸어야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공부를 특별하게 잘하는 아이는 큰 걱정이 없어 보였다. 일반고에 다니며 상위권을 유지한다고 해도 명문대학에 갈 길은 멀게 느껴졌다. 25%가 채 되지 않는 정시전형은 N수생이 대부분 차지한다는 이야기 나돌았다. 75%가 넘는 수시전형을 파고 들어가 봐도 합격의 기준조차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정성적 평가'라는 단어는 그 모호함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왜 명문대학에 보내고 싶어 할까?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면서 명문대학은 그 필연적인 과정처럼 느껴진다. 지방의 대학에서는 학생 부족 현상이 생겨도 명문대학의 문은 좀처럼 넓어지지 않는다. 수요가 많고 공급이 적으면 가격이 상승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처럼 명문대학의 가치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획일화된 욕망'은 경쟁을 유발한다. 경쟁은 비교를 낳고, 가장 편리한 비교 수단인 돈의 양으로 가치를 판단한다. 이러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아이들이 사색하는 방법이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많이 주어질까? 원하지 않아도 동아리에 가입하여 체험을 통한 스펙을 쌓아야 하고 봉사시간을 채워야 한다.


 앞으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초중고 12년 동안 비슷한 생활을 하며 자라난 아이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일은 정말 어렵다. 12년간 학원을 오가며 답답함을 참아낸 아이들에게 대학은 어떤 곳일까. 취업을 준비하는 또 하나의 과정일까. '대학 가서 놀아'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견뎌왔던 시간에 대한 해방감을 만끽하며 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떨까. 르네 지라르가 말한 '타자의 욕망'의 중개자가 부모 자신이란 사실을 인식하고 있을까. 제도를 바꿀만한 힘이 없어 그저 '교육은 핀란드처럼 하면 좋은데'라고 되뇔 뿐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그걸 할 수 없게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오히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아이를 만나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전인권의 노래 가사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을 거라 위로하며 용기를 심어주고 싶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미 자동화 기계가 인간의 직업을 차지하고 있고, 인공지능도 시간을 앞다투어 위협을 더하고 있다. 바람직하지 못한 교육제도는 어른의 잘못이라고 해도 빠르게 변하는 시대까지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게 해서 미안하다. 그러니 이젠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고 해도 젊음이다. 꿈을 가지고 도전하는 젊음을 응원한다.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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