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처음 시작할 땐 모든 것이 막막하다. 흔히 맨땅에 헤딩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시작할 때의 에너지는 강하다. 씨앗이 땅을 뚫고 나올 때처럼. 배우며 경험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하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에 시작했던 일을 알게 된다. 일이 잘 풀릴 때엔 몰라도 그렇지 않을 때엔 시작의 에너지가 사라진다. 일을 알아가는 과정은 재미있지만, 이미 알아버린 것을 되풀이하는 과정은 재미없다. 그래서인지 시작의 에너지만을 되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자주 하며 신선한 에너지를 만끽하고 시들해진다. 구석에 쌓여있는 물건들을 보며 혹은 가벼워진 통장의 잔고를 보며 씁쓸한 입맛을 다지기도 한다.
익숙해진 일에 실증을 느끼고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섰다가, 그 새로운 일이 다시 익숙해질 무렵 실증을 느끼며 좌절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새로운 것에서만 에너지가 많을까? 그런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쇼펜하우어도 인생론에서 고통과 권태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인간은 고통과 권태에서 자유롭다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익숙한 것에 권태를 느끼는 것이 인간의 본능일까. 이런 질문을 가지고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을 관찰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가 있다. 모든 것에 만족 혹은 감사하며 살아가는 태도이다. 권태를 피해 가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족이란 단어와 함께 언급할 수밖에 없는 단어는 욕심이다.
자신의 능력보다 욕심이 커지면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단연코 거짓말이다. 자신의 능력보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을 과욕이라고 하는데, 과욕은 만족과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우연히 자신의 능력 밖의 일에서 성과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오래가는 법이 없다. 제자리 멀리 뛰기를 해보거나 턱걸이를 해보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금방 알 수 있다. 끈질긴 노력과 연습을 하지 않는 한 더 멀리 뛰거나 턱걸이를 더 많이 할 수 없다. 자신의 능력과 상관없이 요행을 바라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엔 사기를 당하기 쉽다. 부동산이나 주식을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말을 듣고 샀다가 많은 손해를 보는 경우가 그렇다. 내 귀에 들어올 정도의 정보라면 이미 타인도 알고 있는 경우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권하는 사람이 왜 자신은 그것에 투자하지 않는가 생각해보면 간단히 알 수 있는 사실도 일확천금을 바라는 마음이 크면 보이지 않는 법이다.
시작할 때의 에너지가 크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래서 시작보다 마무리가 좋은 사람이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험난한 설산에 도전하는 사람은 무수히 많지만, 그 산의 정상에 오르는 사람이 얼마 없는 것처럼 화려하게 시작하는 사람은 많아도 마무리를 멋지게 하는 사람이 적은 것도 같은 이유리라.
시작할 때의 에너지가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꾸준함의 에너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