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상록

같지만, 같지 않아요

잘못된 방향

by 유병천

나이가 늘어가면서 머리카락의 굵기는 가늘어지고 숫자가 줄어드는데 반해 수염의 굵기는 굵어지고 있다. 몸속 영양소의 재배분이라도 일어나는 것 같다. 입 주변의 수염이 많이 자라지 않는 편인데 수염의 강도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중학교 시절에 인중에 솜털처럼 느껴졌던 콧수염이 그리워질 줄은 몰랐다. 문제는 수염뿐만 아니라 코 속에 자라는 코털까지 점점 강해지는 것이다. 코 속에 위치한 코털이 바늘처럼 강해져 살을 파고든다. 손톱이나 발톱이 살을 파고드는 걸 경험해본 사람은 얼마나 아프고 불편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신체의 일부가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것이다. 손톱이나 발톱은 살짝 길러서 더는 파고들 수 없게 만들 수 있다. 살을 파고든 손발톱은 양옆을 부드럽게 하여 적당히 기르면 된다. 하지만, 살을 파고드는 코털은 어떻게 해야 하나? 손톱이나 발톱처럼 기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 번 방향을 잡은 코털이라 그런지 잘라도 길어지면 다시 살을 찌른다.


단 하나의 털이라도 살을 파고 들어가면 무척 아프다. 손톱 사이를 바늘에 살짝 찔리는 느낌과 비슷하다. 알레르기가 올라와서 코를 풀어야 할 땐 그 아픔이 더욱 가중된다. 거울로 자세히 보면 여지없이 코털 하나가 살을 찌르고 있다. 그대로 시간이 지나면 벌겋게 부어오른다. 거울에 얼굴을 가까이 붙인 후 바늘귀를 이용해서 살을 파고든 털을 빼주면 순식간에 고통이 사라진다.


대충대충 마무리짓고 건성으로 넘어가는 것이 우리 쪽의 부족한 점이다. 상품 제조에서부터 작품 읽기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있는 고쳐야 할 관행이다. 말에 대한 엄밀성은 언어 동물인 인간이 가꾸어야 할 첫 번째 기율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글자 한 자의 빠춤이나 더함이 전 세계의 파멸을 의미할 수 있다>는 것은 탈무드에 보이는 말이다. 유태인의 지적 성취의 기초를 보는 듯한 감이 들지만 어쨌거나 시의 경우엔 신통히 들어맞는 금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언어에 대한 엄격성은 자연 앞에서의 경건함과 마찬가지로 인간 품성의 도야와도 연관된다. 두려움을 모르는 방자한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쓰는 것이다. 말과 글은 사람이다.
-유종호


분명히 자신의 몸속에서 자란 털인데도 방향에 따라 자신을 해칠 수가 있다. 평소에 피부 안에 자리 잡은 뿌리 쪽은 아픔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뿌리에서 자라난 털은 조금만 살을 파고들어도 붉게 부어오르고 아프다. 그렇다고 모든 코털이 살을 파고드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휘어지거나 다른 털과 교차해서 자란다. 나의 경우엔 단 한 가닥의 털만 살을 찌른다.


경영에서는 각자 다른 가치관과 삶의 방식(Life style)을 가진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공통의 목표가 조직의 원동력이 된다는 이야기다.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 같은 방향을 향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봄이 되면 약속한 듯 활짝 피는 벚꽃처럼. 만약 단 한 명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하면 거기에서 손실되는 에너지의 양은 생각보다 크다. 특히 파급력이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함께 가는 방향이 아닌 삐딱선을 탄다면 전체가 피곤해진다. 바늘 같은 코털 하나가 온몸에 영향을 미치듯 말이다.


같은 땅에서 자라나는 나무라도 뿌리가 다르고 줄기와 모양이 모두 다르다. 같은 뱃속에서 태어난 형제나 자매도 가치관이나 인격이 모두 다르다. 나무에 꽃이 피지 않는다고 땅을 탓할 순 없다. 잘못된 방향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아프게 할 수 있다. 올바른 방향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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