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만든 공간이 주는 여유
어떨 땐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할 때가 있다. 머릿속을 맴도는 이야기가 있어도 손가락 끝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안고수비(眼高手卑)'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안고수비란, 글을 보는 눈은 높은데 실력이 미치지 못해서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안고수비보다 잡생각이 많아서 그런 경우가 더욱 많다. 작품에 집중하지 못하고 오만가지 생각에 사로잡히다 보면 글쓰기와 무관한 일을 할 때도 있다. 느닷없이 책상 정리를 한다거나 웹브라우저를 열어서 온라인 쇼핑을 한다거나 컴퓨터 바탕화면을 정리하기도 한다. 다른 짓을 하다가 다시 글로 돌아와야 하는데, 술을 마시러 나간다거나 운동을 하러 나가게 된다.
가끔 보는 화가, 작가에게 작품이 잘 안 될 때 어떻게 하냐고 물으면 작품과 '거리두기'를 해보라고 조언할 때도 있다. 집중이 안 되는 작품에서 잠시 벗어나 보면 다른 점이 보일 수 있다는 말도 한다.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생활 속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느끼는 점은 공간이 주는 '여유'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에 살다 보면 여유 공간이 부족할 때가 많다. 거리를 가득 채운 자동차라던가, 많은 사람이 오가는 지하철역의 출구에서 밀려가듯 걸어가는 모습에서 여유를 찾기란 쉬워 보이지 않는다. 생활 속 거리두기나 작품과 거리두기는 공통점이 있다. 의도적으로 공간을 확보해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이다.
중학교 미술 시간에 수묵화의 특징에는 여백의 미가 있다고 배웠다. 먹의 진함과 흐림으로 원근감까지 표현해야 했던 수묵화에서 여백이 주는 아름다움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시간이 빠르다고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물리적인 시간이야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것을 느끼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시간이 빠르다고 느끼는 것은 도로를 메우고 있는 자동차나 거리를 메우고 있는 사람처럼 내 마음이 촘촘하게 채워져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화가나 작가가 이야기하는 '거리 두기'란 결국 마음의 여유를 확보하란 이야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사람 간의 거리가 조금 멀어졌다. 그만큼 서로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멀리서 볼 때 좋은 사람과 가까이서 볼 때 좋은 사람 중 어떤 사람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 자신이 편한 사람. 자신에게 불편한 말을 하지 않는 사람. '거리 두기'를 하더라도 결국 판단 기준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면, '거리 두기'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마음이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잠시 거리를 둔다고 작품을 잘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까지 잠시 뒤로 하는 것뿐일지도 모르니까.
모든 질문이 결국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그래도 억지로 만든 공간이 주는 여유가 좋은 이유는 뭘까.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