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상록

가까운 사이가 가장 어려운 사이

고슴도치의 거리

by 유병천

우연히 참석한 근사한 모임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던가 소개로 만난 사람에게 친절한가? 내가 겪은 관계에서는 대부분 그랬다. 간혹 처음부터 까칠하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은 첫 만남에서 친절한 인상을 주었다. 특히 직위가 높거나 중요한 일을 담당하는 사람에겐 더욱 깍듯이 대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반대로 가까운 사이 혹은 친한 사이에겐 함부로 대하는 경우를 자주 봤다. 특별히 대인관계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도 이상하리만치 가까운 사람이나 가족에게는 퉁명스럽게 말하거나 짜증을 내는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 고백하자면 나도 가족에게 그러는 경우가 잦았다. 일로 예민해져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가족에게는 짜증을 냈다.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라도 거래처의 어려운 사람에게 짜증을 낼 수 있을까? 어려운 사람에겐 최대한 짜증을 억누르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자. '어려운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있는가?' 왜 가까운 사람에게만 짜증을 내는 것일까? 친한 친구나 가족은 나의 짜증을 이해해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까. 아니면 짜증을 견디는 정도를 가까운 사람에게 확인이라도 하고 싶은 것일까. 가까운 사람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것일까? 어려운 관계에서 시작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친한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친해지면서 서로를 존중해주는 사이도 있고, 친해지면 서로를 깎아내리며 예의를 잃어버리는 사이도 있다.


친한 사람과 문제가 발생하면 어린 시절에 읽었던 고슴도치의 딜레마가 생각난다. 고슴도치는 몸에 가시가 있어서 너무 가까워지면 서로를 찌른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람도 고슴도치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불편함이 없는 것일까. 적당한 거리를 두고도 친한 사이가 될 수 있을까. 필요할 때만 만나는 사이를 가까운 사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어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소수의 사람을 만난다.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소수의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더욱 친밀도가 높을 수 있다.


가족이라고 해도 얼굴을 안 보고 사는 경우도 있고, 남이라고 해도 평생 만나며 사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왜 생기는 것일까? 어쩌면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해서 예의 없게 행동하거나 혹은 내가 뭘 해도 이해해줄 거라 기대하기 때문은 아닐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어려운 관계라고 생각을 해보자. 근사한 모임에서 처음 만난 매력적인 사람을 대하듯 가장 가까운 사람을 대한다면 어떨까? 개인화 혹은 자기중심적 생활 문화가 가져온 불편한 변화를 극복할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유난히 질문이 많아지는 시기이다. 집단보다 개인이 부각되는 시기에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어떠한 현상을 정의 내리는 것이 편했던 시기를 지나, 어떤 것도 정의 내리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 기분이다. 이 사람은 이럴 수 있고, 저 사람은 저럴 수 있다. 넌 그렇고, 난 이렇다. 개성이 넘치고 자신의 가치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시대. 하지만, 빅데이터로 무장한 인공지능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시대. 이런 시대에서 가까운 사람, 아니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방법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을 가장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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