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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양

김송순 작가의 <반반 고로케>를 읽고

by 유병천



다양한 문화와 빠르게 변하는 환경은 더는 새롭지 않게 느껴진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시골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것이 이젠 낯설지 않다. 외국인이 없으면 농사하기도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온지는 한참 되었다. 자연스럽게 다문화가정의 아이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반반 고로케>의 민우는 한국인 아빠와 외국인 엄마 사이에 태어난 아이다. 아빠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엄마는 더 먼 나라에서 온 이슬람 문화권에 살던 이사드 아저씨와 결혼한다. 민우는 아빠의 빈자리에 이사드 아저씨가 있는 것이 못마땅하다. 아빠의 오토바이를 타는 것도, 맛있는 고로케도 햄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못 먹게 하는 것도, 아빠가 앉아 있던 의자에 앉는 것도 모두 싫다.


한국 남편과 외국인 아내. 사고로 떠난 한국 남편의 자리를 외국인이 대신한다는 설정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작가의 말을 읽고 깜짝 놀랐다. 김송순 작가가 방과 후 학교에서 실제 만났던 아이를 모티프로 썼다는 대목에서 설정이 아니라 것을 알게 되었다.


민우는 달리기를 잘한다. 잘하는 건 주위에서 알아봐 준다. 한글은 잘하지 못하는 민우였지만, 달리기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다. 육상부 친구에게 까막눈이라고 놀림을 받으면서도 버틸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잘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기 때문은 아닐까.

1.jpg <반반 고로케> 김송순 작가 이미지 : 놀궁리
아저씨는 내 물음에 대답을 해 주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거실 안에 아저씨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린 가족이니까."
"우리가 가족이라고요?"
내 말에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저씨가 내 걱정을 하며 찾아다녔다고, 맛있는 차를 끓여 줬다고 금방 가족이 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p67


가족의 의미란 무엇일까? 1인 가구가 늘어가는 요즘엔 가족이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 한국인 아빠, 외국인 엄마, 외국인 새아빠. 관계는 우연히 생기고 어떤 계기로 인해 사라진다. 혈연이라고 해도 사이가 나빠지면 남보다 못한 경우도 있고, 남이라고 해도 사이가 좋으면 가족보다 나은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과 만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의 관계에서도 유용성을 따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나서 좋은 사람보다 언젠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것처럼 말이다. <반반 고로케>의 민우와 외국인 새아빠 이사드도 달리기로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한다.


<반반 고로케>는 민우를 통해 말한다. 사람은 기다림과 사랑으로 자란다고. <반반 고로케>는 이사드 아저씨를 통해 말한다. 사람은 평생 자란다고. 어른들도 여전히 자라고 있으며 그래야만 한다고. <반반 고로케>는 모든 등장인물을 통해 말한다.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기대어 산다고.
-167 (아동문학평론가 송수연) <추천사> 천천히, 서로 한 걸음씩 중


평론가 송수연 선생이 말하듯 사람은 기다림과 사랑으로 자라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기다리고 사랑하고 자라고 있다. 관계에도 유용성을 따지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사람과 사람은 기대어 산다는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코로나19(COVID-19) 시대에 <반반 고로케>를 읽고 '그냥' 만나면 좋은 사람과 막걸리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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