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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사랑한다는 말을

<아들과 아버지> 이정록 시인의 동화를 읽고

by 유병천

장인어른께서 세상을 떠난지도 벌써 3년이 되어간다. 이정록 시인의 동화책을 펼치며 장인어른의 생각이 난 건 고향이 장인어른과 같은 충남 홍성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에서도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버지, 저도 아버지한테 참 어설펐어요."
-작가의 말


시인의 고백이 가슴 한 곳을 저리게 만든다. 세상 모든 아버지와 아들이 헤프게 사랑을 나눴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그렇고, 아버지의 시냇물이 제게로 와서 강물이 됐으니 마른땅을 적시며 흐르겠다는 다짐이 그렇다. <아들과 아버지>을 읽으면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시골에서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릴 적에 명절이나 방학 때 가본 시골의 풍경과 비슷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시골에는 <아들과 아버지>의 풍경이 존재할까? 시간에 쫓기는 듯 살아가는 도시인의 마음속에 잔잔한 시냇물 같은 동화책이다.


착해 빠져서!

'착해!'라는 말과
'착해 빠져서!'라는 말은
하늘과 땅 차이다.

'착해 빠져서!'라는 말은
'착해!'가 빠졌으니
착하지 않다는 소리다.

착하기만 하면 뭣 해?
착한 것 하나 빼면
아무것도 없다는
빈정거리는 말이다.

-이정록, (착해 빠져서! 중)


<아들과 아버지>는 중간중간에 시를 읽는 즐거움이 있다. 학교에 가서 공부하기 싫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도 고스란히 생각나고 친구와 다투며 자라던 모습도 생각난다. 아버지가 읽고 아들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다. 시대마다 추억의 모습은 다르다. 아버지 시대엔 참새 잡기, 논에서 썰매 타기, 팽이치기를 했다면, 도시의 아이들은 피시방, 쇼핑몰, 놀이공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서로의 추억을 공감할 수 없지만, 아들이 아버지 시대의 모습과 마음을 상상하기엔 더없이 좋다.


아들과아버지.jpg <아들과 아버지> 이정록 글 배민경 그림. (이미지 출처 : 단비어린이)


"어른과 아이의 차이가 뭔지 아냐?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할 줄 아느냐? 못 하느냐? 그 차이다! 어서 동생한테 사과해라!"
-p57


나도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에 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정록 작가의 글을 보면 난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다. 언제쯤 어른이 될까. 언젠가 이정록 작가와 막걸리를 한 잔 마시고 싶다. 따뜻한 추억이 담긴 홍성의 이야기와 함께. 나도 <아들과 아버지>를 아들에게 선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 종반부에 실린 '사랑하는 아들에게'라는 시의 전문을 적어본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들아, 살다 보면
분명 배고픈 악어가 너를 노려보는
우거진 늪을 만나게 될 것이다.
건너편 강 언덕이 너무 먼 것도,
키가 작아 다리가 짧은 것도 원망하지 마라.
악어를 만나면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함께 징검돌을 놓고 다리를 놓는 토목 공학자가 돼라.
포구를 만들고 배를 띄우는 조선 공학 기술자가 돼라.
그러므로 너는 흙탕물 넘치는 강에 다다르기 전에
알통을 키우고 설계 도면을 읽고 바람의 길을 배우고
눈빛만으로 벗을 사귈 수 있는 믿음을 쌓아라.
그렇게만 한다면 돈과 명예가 코앞에 펼쳐지리라.
하지만 박수 소리에 정신을 빼앗기지 마라.
손뼉 안에 빨려 들어간 모기처럼 순식간에 깜깜해진다.
돈 세는 소리도 즐겨하지 마라. 돈 셀 때 이는 바람이
가장 차갑고 날카로운 칼바람을 불러온다.
돈은 금고에 가둬 놓고 독방에 앉아 세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밥이 되고 옷이 되도록 내보내는 것이다.
아들아, 다른 이의 가슴에서 감동적인 책을 빌려 읽고
상처가 지나간 모든 슬픔 위에 정성껏 글을 쓰거라.
혼자 있을 땐 낙락장송처럼 웅장하게 생각하고
여럿이 있을 땐 숲속 햇살처럼 고요하게 춤을 춰라.
아들아, 잘 먹어야 한다.
땀 흘려 일하지 못한 날에도 굶지는 마라.
하지만 누군가에게 아픔을 건넨 날에는 숟가락을 들지 마라.
언제나 눈물샘이 마르지 않도록 걷고 기도하라.
아들아, 너는 끝끝내 울보가 돼라.

-이정록 (사랑하는 아들에게) 전문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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