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력과 가치관을 만드는 것은 생각 언어
우린 자신에 관한 판단도 타인에 대한 판단도 모두 언어로 한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도 상대의 의도보다 내 안에 있는 언어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언어의 폭이 넓지 않다면, 엉뚱하게 해석하기도 한다. 어린아이들이 어른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휘가 풍부하지 않은 아이에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우린 언어로 소통하고, 언어로 표현하고, 언어로 생각한다. 결국 자신의 생각을 만드는 것은 언어이다.
생각언어는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보고 듣고 배운 것에 의해 만들어진다. 어릴 적부터 차곡차곡 쌓인 언어에 의해 관점이 생기고 판단력이 길러진다. 어떤 생각 언어가 쌓였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같은 책을 읽거나 같은 영화를 보고도 해석이 다른 이유도 생각 언어 차이이다. 같은 현상을 보고 다른 판단을 하는 사람을 접할 때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도 같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대의 표현언어나 행동이나 눈빛 등 일부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를 보고 판단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언어이다. 자신의 생각언어로 타인을 판단하는 것을 타인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상대의 표현을 보고 듣고 공감하거나 공감하지 않을 뿐이다.
형제자매라도 혹은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온 사람이라도 같은 생각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수없이 많은 소통을 했다고 해서 상대가 같은 생각을 할 거란 기대를 할 수도 없다. 비슷한 생각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공감을 할 뿐이다. 다른 생각언어를 가진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판단을 하길 바라는 경우가 있다. 상대에게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은 '기대'가 생기는 것이다. 상대의 변화를 기대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생기는 것은 '실망'이다. 상대의 생각언어를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는 순간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간혹 자신의 모습을 비관하며 변화를 원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변화를 원하는지 말로만 변화를 말하는지 알 수 없다. 긍정적인 변화를 원하는 사람에게 조언한다고 해서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낄지, 반대로 기분 나빠할지 알 방법이 없다. 변화란 깨우침에 의해 본인 스스로만 할 수 있다. 진정한 변화란 생각언어의 변화라고도 말할 수 있다. 생각언어는 타인의 영향을 받는 경우는 있어도 본인 스스로의 영역이라 타인이 강제로 변하게 할 수 없다. 변화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언어를 바꿀 수 있는 시도를 해야 한다. 켜켜이 쌓인 자신의 생각언어의 생성 과정을 돌아보고 자신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찾아낸 생각언어를 과감히 버리고 다른 생각언어로 채워야 한다.
우린 자신의 삶을 만족스럽게 살고 싶어 한다. 또한 타인에게 인정받길 원한다. 거친 표현언어를 사용하고 행동 또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상대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 상대를 온전히 인정하고 좋아할 수 있을까? 혹은 비아냥의 언어로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상대에게 마음을 열 수 있을까? 만약 자신이 사용하는 표현언어가 거칠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면 생각언어보다 먼저 표현언어를 바꿔야 한다.
자신의 생각언어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뿐이다.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