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1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클라리세는 사랑의 뿌리를 더듬어보았다. 그 뿌리는 모순적이다. 키스를 하면서도 물어뜯고 싶고, 시선이 엉겨붙어 있으면서도 마지막 순간에는 고통스럽게 눈을 돌리게 된다. ‘좋게 잘 지내는 것이 미움을 이끌어내는 것일까?’ 그녀는 자문해 보았다. ‘단정한 삶이 잔인한 것을 열망하는 것일까? 평화로운 것이 파괴적인 것을, 일상의 평탄함이 파탄을 욕망하는 것일까?’ 모스브루거가 자극한 것은 이것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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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세는 어린 시절 발터와 사랑에 빠진 후 결혼한다. 함께 피아노를 치며 잘 살아온 듯하다가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에 빠진다. 그녀를 괴롭히는 데몬들은 다시 사랑을 찾고 싶어 하는 발터와의 간극을 만들어낸다. 어릴 적 친구인 울리히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고 확언한다. 많은 부부가 그렇듯 어릴 때의 환상은 삶 속에 점점 사라져 간다. 상대에 대한 믿음, 추억 혹은 명분 같은 것이 필요해 보이는 관계도 많다. 사랑해서 만난 사람을 '지겨워 죽겠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모든 관계가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뭔가 대단한 것을 기대했던 클라리세는 발터가 왠지 모르게 시시해진 모양이다.
저녁이 되었다. 방은 온통 까맸다. 피아노도 까맸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그림자도 까맸다. 이런 어둠 속에서 클라리세의 눈만 어떤 빛에 밝혀진 듯 빛났고, 고통으로 불안해하는 발터의 입속에서 에나멜로 덮인 치아 하나만 상아처럼 어른거렸다. 지금 바깥세상에서 매우 중요한 국가적 차원의 대운동이 진행 중인 것과는 상관없이, 그리고 발터의 불쾌감과는 상관없이, 조물주가 바로 지금을 위해 세상을 창조한 듯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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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듯 사랑도 저무는 것일까. 격정적인 피아노 연주 후에 적막이 흐르는 장면이 그려진다. 클라리세의 데몬과 발터의 불쾌감과 밖에서 진행 중인 평행운동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명의 개인이 있고, 클라리세의 거친 숨소리만 들리는 것 같다.
왜 세상 사람들은 본래 의도와는 동떨어져 있고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진실이 아닌 말을 그렇게 소름 끼치게 선호하는 것일까? ‘거짓말을 하면 항상 한 걸음을 앞서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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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할 정도로 진실이 아닌 말을 선호하는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는 거짓이라도 선호하는 경향이 더 강한 것 같다. 남에 대한 험담처럼 사실과 다르더라도 재미있게 듣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거짓말을 하면 한 걸음 앞선다는 생각에서는 만화나 공상과학영화가 떠오른다. 초등학생 시절 만화로 봤던 통화가 가능한 시계를 지금은 손목에 차고 있다. 어찌 보면 거짓이 진실이 되는 순간도 제법 목격하며 살아온 것 같다. 그런 상황을 경험하면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거짓을 증명하는 것에도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결국 거짓말을 일삼는 사기꾼이 어떤 면에서는 앞서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니 더 화가 난다.
그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도 별로 과장은 아닌 듯하다. 그의 삶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은 그의 것이라기보다 삶을 구성하는 것들 서로의 것이라고. A 다음에는 항상 B가 왔다. 그 결과를 낳은 것이 다툼이건 사랑이건 간에. 그래서 그도 그 과정에서 획득한 개인적 특성들이 자기 것이라기보다 특성들 서로의 것에 가깝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엄밀히 따져보면, 개별적 특성 하나하나는 그것들을 갖고 있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별히 자신과 더 내밀한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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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독특한 관점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특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특성이 있고 그걸 나타내는 것이 인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나도 어떤 특성의 집합 속에 속한 일부이다.
다른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어떤 일과 그 관계 속에서 판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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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주변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플라톤의 일화 중 "이보시오,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욕하고 있소!"라는 말을 듣고 "내버려 두시오. 난 그들이 말을 바꾸도록 살 것이오."라는 대화가 생각난다.
그가 항상 자신의 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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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강의를 들을 때 수강생 한 명이 물었다. "선생님은 무엇을 믿고 사나요?" 세상에는 신을 믿는 사람도 있고, 돈을 믿는 사람도 있다.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해서 철학 선생의 입을 주목했다. "저는 제 자신을 믿어요." 살아서 구원을 찾고 싶은 사람이라면 결국 자신의 힘을 믿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만일 어떤 살인자가 자기 일을 냉정하게 처리한다면 굉장히 무자비한 인간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고, 아내를 품에 안은 상태에서도 머릿속으로 학문적 과제에 매달리는 교수라면 무미건조한 인간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며, 많은 사람을 제거하고 출세한 정치인이라면 그 성공 여부에 따라 괴물이나 영웅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반면에 군인, 사형집행인, 외과의사에게는 바로 그런 무감각과 냉혹함이 요구된다. 다른 경우라면 비난받을 특성인데도 말이다. 이런 보기들에 담긴 도덕성으로 더 깊이 파고들어 갈 필요도 없이, 객관적으로 올바른 태도와 개인적으로 올바른 태도 사이의 절충은 모든 경우에서 불확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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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도 상황이나 타인의 판단 그리고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 아니 특성을 지닌 개인이라도 결국 관계 속에서 다르게 인식한다. 몽테뉴의 경우에는 상황보다 자신 속에 여러 가지 측면이 내재해 있다고 이야기했다. 말이 많으면서도 무뚝뚝하고, 학자인 듯하면서도 무식하고, 깨끗하면서 더럽다고 한 것처럼. 관계 속에서의 판단은 타인의 것이라면 여러 가지 특성을 지닌 것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수많은 타인이 개인의 일에 개입하고 개인보다 개인을 더 잘 아는 오늘날, 자신의 분노가 실제로 자기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이로써 남자 없는 특성의 세계가 생겨났고, 경험하는 주체가 없는 경험의 세계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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