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1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사실 이런 갈등은 원칙적으로 상호 간의 이해 부족에서 연유한 것일 뿐이었다. 많은 부부들이 그렇듯, 서로에 눈멀어 달콤했던 신혼기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불행한 충돌이 시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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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의 부족. 오해와 이해 사이의 간극은 좁다고 할 수 없다. 특히 부부 사이에서는. 부부라고 해도 매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생각을 하며 살지 않는다. 각자 만나는 사람이 다르고, 함께하는 시간은 많지 않다. 같은 공간에 살고 있다고 해서 적극적인 소통을 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잠이 든 시간을 제외하면 실제 대화하는 시간은 극히 적다. 그래서인지 타인을 통해서 배우자의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더 많다. 불행한 충돌은 아마도 타인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충돌을 피하는 방법은 이야기를 전하는 타인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말로는 좋은 의도이지만, 그 속에는 독소가 담겨있는 경우가 많다.
옛날에는 코 중앙에 걸친 코안경과 함께 영국 귀족 같은 인상을 풍기던 남편의 잘 다듬은 구레나룻도 이제는 증권중개인 같은 느낌만 줄 뿐이었다. 거동과 말투에 밴 그의 습관 하나하나도 이젠 견딜 수가 없었다. 물론 처음엔 클레멘티네도 그런 남편을 고쳐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곧 예상치 못한 거대한 난관에 부딪혔다. 세상 어디에도 어떤 구레나룻이 귀족 같고 어떤 구레나룻이 증권중개인 같은지, 혹은 손동작과 연계해서 코의 어느 지점에 코안경을 걸쳐야 열정적으로 비치는지 냉소적으로 비치는지 판단할 합당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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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부부 중 사이가 좋지 않을 때엔 배우자의 뒤통수만 봐도 화가 난다는 말을 한다. 배우자가 그토록 싫은 이유를 물으면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기 때문에 나오는 언어일 것이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 사이에 사라진 것은 신뢰, 애정, 사랑, 우정보다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인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나도 사람은 처음의 설렘을 기대한다. 그것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렸기 때문에 서먹해진다. 안타까운 점은 설렘은 노력으로 생겨나질 않는다는 사실이다.
레오는 그런 시대적 바람이 저절로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이 기다림은 올곧은 신조를 가진 사람들에게 삶이 내린 분노의 고문, 그 첫 단계였다. 아직 피부로 확 와닿지 않았지만 말이다. 두 번째 단계는 대개 그렇듯 ‘독’이었다. 이 독은 도덕, 예술, 정치, 가족, 신문, 서적, 사회관계 전반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물방울이 되어 똑똑 떨어지는 현상이었는데, 거기엔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무기력한 감정과 이미 일어난 일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격앙된 부정이 수반되어 있었다. 피셸 이사는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던 시대적 광기의 물줄기가 소나기를 지나 지속적인 비로 변하는 세 번째 네 번째 단계도 겪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매일 십 분씩 철학하는 인간에게 가장 끔찍한 고문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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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피셸은 매일 십 분씩 철학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어떤 의도에서 그런 표현을 썼는지 몰라도 금융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매일 사색을 한다는 것은 매우 낯설어 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자신이 믿는 가치가 주변의 상황에 의해 도전을 받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특히 피셰의 딸과의 충돌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요즘 언어로 딸에게 아빠는 그저 꼰대로 비칠 뿐이다. 타인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란 것을 인식한 사람에게 자신을 증명하는 일이 고문처럼 느껴지는 것은 적극적으로 공감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현대에는 모든 일이 복잡해진 탓에 인간은 단 한 분야에만 정통할 수밖에 없었다. 레오 피셸에게 그것은 대출과 유가증권이었다. 따라서 밤에는 굴복하는 성향을 보였다. 반면에 클레멘티네는 남편의 이런 태도에도 날카롭고 뻣뻣하게 굴었다. 의무에 충실한 관료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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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시대에 여러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것은 난이도가 높은 일이 많아졌다는 말과도 같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복잡한 시대에 한 가지라도 잘하는 것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아침에도 가정의 관습에 충실하게 함께 식사를 했지만, 크레멘티네는 시체처럼 뻣뻣하게 얼어붙어 있었고 레오는 눈치를 보며 잔뜩 예민해져 있었다. 딸 게르다조차 매번 이런 상황을 알아챘고, 공포와 씁쓸한 반감 속에서 결혼생활이란 밤중의 고양이 싸움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스물세 살의 게르다는 부모의 가장 큰 갈등거리였다. 레오는 딸아이를 위해 좋은 혼처를 물색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게르다는 말했다. “아빠는 너무 구식이에요!” 그녀의 남자 친구들은 죄다 게르만 민족주의 성향을 가진 크리스천이었는데, 가족을 먹여 살릴 전망이 전혀 안 보이고, 그러면서도 자본을 경멸하고, 이제껏 어떤 유대인도 인류의 위대한 상징이 될 능력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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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가장 난감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자식의 가치관이다. 레오 피셸의 경우처럼 말이다. 소원해진 부부사이를 제외하더라도 자식까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경우라면 집안이 무인도처럼 느껴질 것이다.
왜 하필 그가 갑자기 이 시대에 맞는 사고를 할 수 없게 되었을까? 그들 모두 같은 시스템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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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히 변하는 시대에 순응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일에 너무 몰입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특히 정해진 틀 안에서 규약, 규칙, 약관, 법률, 지침 등에 매몰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시대에 맞는 사고를 할 수 없게 된다. 눈앞에 해결해야 하는 일들은 시대의 변화와 무관하다. 규약이나 법률이 바뀌어야 비로소 따라가는 삶이라면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인간이 빠르게 변하려면 법률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 식이다. 하지만, 법률의 변화는 그 얼마나 느린가.
요즘 사람들은 휴지가 빗물에 견디지 못하듯 의심을 견디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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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의심을 견딘다는 것은 그만큼 심지가 곧은 것이다. 곧은 심지를 흔드는 현상이 난무하는 시대엔 그야말로 거대한 도전이 아닌가.
삶은 반 이상이 행위가 아니라 외부에서 주입된 틀에 박힌 사고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이것은 이렇게 봐야 하고 저것은 저렇게 봐야 한다는 사유의 틀, 그리고 어디선가 들어서 알게 된 것들의 비인격적인 더미로 이루어져 있다. 이 부부의 운명은 대부분 음울하면서도 질기고 혼란스러운 한 사고층에 좌우되었다. 그 사고들은 결코 그들의 것이 아니라 여론이라는 타자의 것이었고, 개인의 생각도 여론의 변화에 따라 무방비 상태로 바뀌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비인격적 의존성에 비하면 인격적 상호 의존성은 극히 작은 일부이자, 터무니없이 과장된 찌꺼기일 뿐이었다. 두 사람은 각자 사생활을 갖고 있다고 스스로를 기만함으로써 상대방의 성격과 생각을 의문시했지만 정작 그 싸움의 비현실성은 온갖 불쾌한 일들에 가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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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과의 다툼도 대부분 타인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문학에서도 타자의 욕망에 관하여 자주 이야기한다. 당사자 간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그 사이를 방해하는 중개인에 의해 변질된 욕망이 발생하는 것이다. 변질된 욕망이 갈등을 만들고, 갈등은 이야기를 만든다. 소설의 법칙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을 때 남는 것은 후회뿐이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자신의 책임과 결백함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사람일수록 외부의 비난을 완강히 거부하는 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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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분야에 충실한 사람. 정말 모든 것을 열정적으로 행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 같다. 어떤 분야에 저명한 인사에게 그 사람이 평생을 연구한 내용을 비난해 보라. 아마도 한결같은 반응을 접하게 될 것이다.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