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뷰 상자

제2부 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16)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1 -문학동네

by 유병천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52. 투치 국장이 부처 업무에서 하나의 결함을 확인하다


볼테르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은 생각을 감추기 위해 말을 하고, 불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생각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었다. 특히 외교라는 것이 그랬다. 그런데 진정한 의도를 말 뒤에 감추기 위해 아른하임처럼 그렇게 많은 말을 하고 글도 많이 쓰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안해졌다. 아른하임은 꼭 배후를 캐야 할 하나의 새로운 현상이었다.
-327


생각을 감추기 위해 말을 하고, 불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생각하는 사람을 수시로 접한 것 같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 혹은 앞과 뒤가 다른 사람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다. 거짓을 말하고 그 거짓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 또 다른 거짓말을 하는 부류가 그렇다. 거짓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완벽한 거짓말이란 없다. 타인에게 들키지 않았더라도 거짓말을 한 본인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53. 모스브루거가 다른 감옥으로 이송되다


‘마지막 식사를 하고 성직자와 간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십오 분 만에 모든 게 끝나는 사형집행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그 일 역시 나름의 바퀴를 타고 춤추듯이 앞으로 나아갈 거고, 지금 차가 덜커덩거릴 때마다 의자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사람들은 계속 바쁘게 제 할일을 하겠지. 나는 사형이 집행되는 동안에는 많은 것을 보고 듣지 못할 거야. 주위에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닐 것이기 때문이지. 모든 것에서 벗어나 끝내 평화를 찾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고자 하는 욕망에서 해방된 사람의 우월감은 무척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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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브루거의 생각에서 읽을 수 있듯이 사람은 타인보다 자신에게 관심이 더 많다. 세간의 주목을 끈 살인자 모스브루거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모두가 자신의 일에 바쁘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뉴스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그 일이 자신의 일이 되어야 깊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54. 울리히는 발터, 클라리세와의 대화에서 반동적 태도를 취하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결코 완벽하지 못해, 미숙할 뿐 아니라 자기 일을 완성하겠다는 생각도 못해. 어쩌면 그런 소망조차 갖지 못할 거야. 가령 연구자가 영혼을 생물학적 심리적으로 완전히 분석해서 자유자재로 다루는 법을 알아낸다면 그때도 아직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우리는 그걸 목표로 삼고 추구해 나가! 그게 문제지. 지식은 행동이자 열정이야. 원칙적으론, 허락되지 않은 행동이지. 알아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도 알코올중독이나 섹스중독, 폭력중독처럼 균형을 잃은 성격을 만들어내거든. 연구자가 진리를 추구한다는 건 완전히 잘못된 말이야. 반대로 진리가 연구자를 추구하지. 연구자는 그냥 진리를 겪는 거야. 진실한 것은 연구자와 상관없이 진실해. 그건 사실도 마찬가지고. 연구자는 진실한 것에 대한 열정만 있을 뿐이야. 사실적인 것에 대한 중독이 그의 핵심 성격이지. 그래서 자신의 연구 결과로 전체적이고 인간적이고 완벽한 것이 나오건, 아니면 다른 무엇이 나오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 연구자라는 인간들은 괴로워하면서도 엄청난 실행력을 갖춘, 모순으로 가득찬 존재야!”
-333~334


진리가 연구자를 추구한다는 것, 연구자는 진리를 겪는다는 관점은 정말 새롭다. 어쩌면 모두가 알고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생각하지 못하는 내용일 수도 있다. 진실한 것은 연구자와 상관없이 진실하다는 것. 진실한 것은 법률과와 상관없이 진실하다. 다만, 사회의 시스템에 따라 그것이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을 뿐일 수 있다. 발명이나 발견이란 행위가 가져온 변화만 인지하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변화 중에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있다. 인간은 어쩌면 긍정적인 부분만을 추구하며 부정적인 부분을 뒤로 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 세계와 우리 자신에 대한 시각은 날마다 바뀌지. 우린 과도기에 살고 있어.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의 근원적인 사명을 지금까지보다 더 잘 완수하지 못하면 이 시대는 어쩌면 지구의 종말까지 이어질지도 몰라.”
-334


주변 환경에 따라 관점은 달라진다. 환경 변화에 순응하느냐 반항하느냐의 차이는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 자신의 근원적인 사명을 완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걸 하지 못하면 지구의 종말까지 이어질 수 있다니.


울리히는 그녀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뭔가를 흘려들은 게 분명했다. 그녀의 말에 의미를 부여하는 비유나 은유를 놓친 것 같았다. 이처럼 의미가 빠진 말을 마치 그녀의 일상적 경험을 듣듯이 자연스럽게 듣고 있으려니 퍽 야릇했다.
-337


강의를 할 때, 혹은 둘만의 대화 등 의사소통을 할 때 문해력의 부족으로 은유나 비유를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전문가의 생소한 언어를 듣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해가 결여된 사항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엔 머리 속에는 물음표가 가득해진다. '내가 언제 저런 말을 했지?' '앗! 그런 의미가 아닌데.' 등 비뚤어진 내용을 바로 잡으려면 다시 처음 말했던 은유나 비유에 관해서 설명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상대에게 꼭 전해야 할 내용이 있다면 비유나 은유를 사용하지 말라는 조언도 한다. 리터러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시대에서는 은유나 비유도 비슷한 문화나 경험을 지닌 사람에게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괴테가 말한 그런 온전한 교육은 더이상 없어. 때문에 오늘날엔 모든 생각에 반대 생각이 존재하고, 모든 성향에 반대 성향이 존재하지.모든 행위와 반대 행위는 지성 속에서 각각 명민한 근거를 찾아내고, 사람들은 그 근거를 들어대며 남의 행위를 방어하거나 공격해. 나는 자네가 어떻게 그런 경향을 옹호하는지 이해가 안 돼!”
-338


생각의 다양성. 같은 사회, 같은 자본주의, 같은 국가, 같은 도시, 같은 학교, 같은 직장에 있다고 모두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회가 고도화 되고 저마다 느끼는 가치 또한 다양하다. 철학 수업 때 질문을 받았다. '거대한 동물원에서 사자를 키우고 있다. 사자에게 먹이를 줄 때 죽은 고기를 줘야 하나? 아니면 산 채로 사냥감을 줘야 하냐?' 이 질문에 대한 답변도 다양하고 그 다양한 답변은 저마다 근거를 대며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사람의 생각은 모두 애정 아니면 혐오야!’ 울리히는 생각했다. 순간 이 말이 정말 맞게 느껴졌다.
-338


현상을 이분법으로 단정짓는 것을 무척 불편해하지만, 사람의 생각이 애정 아니면 혐오라는 말에 반박할 이야기를 찾지 못했다.


“오늘날 진지하고 이성적인 것, 혹은 쉽게 간파할 수 있는 것이 더이상 없다고 한다면 자네 말이 맞아. 하지만 전체를 깊이 병들게 하는 이 모든 것의 책임이 점점 세력을 넓혀가는 이성에 있다는 사실은 왜 외면하지? 오늘날 모든 사람의 머릿속엔 점점 이성적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이 있어. 예전보다 더 삶을 합리화하고 전문화하려는 갈망이기도 하지. 하지만 그러면서도 만일 우리가 모든 것을 인식하고 분석하고 유형화하고 기계화 하고 표준화했을 때 과연 우리가 어떻게 될지 생각할 능력은 없어. 이대로 계속 갈 수는 없어.”
-339


100년 전의 통찰 속에 현재를 살아가는 느낌이다. 우리는 현재 이성, 초합리, 전문화가 가져온 사회에 살고 있다. 편리함, 빠름, 풍족함 그와 반대로 기후변화, 쓰레기, 불신이 만연하는 시대. 과연 우리는 어떻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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