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뷰 상자

제2부 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14)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1 -문학동네

by 유병천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49. 구외교와 신외교 사이에 나타나기 시작한 갈등들


“물론, 하지만 우린 현실적인 결정을 내려야 해요. 시대에 맞는 목표를 찾아야 할 이 운동의 위원으로 설마 주교를 뽑을 생각은 아니잖소? 신은 근본적으로 현대적이지 못해요. 프록코트를 입고 말끔하게 면도를 하고 가르마를 탄 신을 상상할 수 있겠소? 우리에게 신의 이미지는 여전히 가부장적이오. 그럼 종교 외에 뭐가 있겠고? 민족? 국가?”
순간 디오티마는 기뻤다. ‘국가’라는 문제를 여자들과 대화할 사안이 아닌 남성적인 일로 여기는 남편이 자기 있는 데서 ‘국가’라는 말을 꺼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치는 말을 더 잇지 않고 침묵했다. 다만 두 눈에는 아직 할 말이 좀 더 남은 듯한 빛이 담겨 있었다.
“과학은요?” 아른하임이 계속 물었다. “문화는요? 예술도 있죠. 사실 실존의 통일성과 인간의 내적 질서를 맨 먼저 반영하는 것이 예술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오늘날의 예술을 보면 전부 분열상만 가득하고, 아무 관련 없는 극단적인 것만 표현하고 있죠. 처음엔 스탕달, 발자크, 플로베르가 기계화된 신사회와 감정 세계를 서사적으로 담아내더니 도스토예스키, 스트린드베리, 프로이트는 인간 심층의 악마성까지 들추어냈습니다. 그 사람들 말대로 하자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감정만 남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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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라고 부르는 이 시대를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세계에서 신이 물러가고 과학과 합리가 자리를 잡는 느낌을 표현한다. 디오티마의 반응에서 여성의 사회 참여가 제한적이었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다. 극단적인 표현이 주목받는 시대를 예술가가 표현한 것처럼 요즘은 그러한 현상이 일상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인간의 행위를 과학으로 분석하고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까지 들추어낸 시대에 남는 것은 감정뿐인 것일까. 아마도 감정이 이성이나 오성의 자리를 위협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듯싶다.


“오늘날엔 누구도 그 대답을 모릅니다.” 아른하임이 답했다. “문명의 문제는 가슴만으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인간의 등장으로, 내면의 비전으로, 순수한 의지로 말입니다. 오성은 위대한 과거를 자유주의로 약화시키는 것밖에 이룬 게 없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충분히 멀리 보지 못하고 너무 작은 잣대로만 재고 있는지도 모르죠. 모든 순간이 세계 전환의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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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정답은 없다.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며 살아가는 인생이다. 그 답은 아무도 모른다. 새로운 인간의 등장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모스부르거를 통해서 보여주려는 이미지도 결국 독특한 인간형이 아닐까. 아른하임을 시대의 지성으로 그린 이유도 정말 다양한 사람, 다시 말하면 다양한 삶의 방향을 이야기하려는 것 같다. 변화의 흐름을 따르려는 자, 앞서려는 자, 외면하려는 자, 와중에 공통점을 찾으려는 자, 그리고 어떤 특성에도 속하고 싶지 않은 자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더욱 강한 힘을 뽐내는 것 같다.


50. 계속되는 발전. 투치 국장은 아른하임이라는 인물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마음먹다


아른하임은 항상 세계사를 통해, 혹은 자신의 행동에 베푼 이데올로기적 세례를 통해 도덕적으로 기우는 성향을 보완했다. 사유를 권력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사업을 정신적 문제와 관련시키는 것이 그가 가장 즐겨하는 발상이었다. 그는 역사를 새로운 삶으로 채우기 위해 역사 자체에서 비유를 끌어오는 것을 좋아했다. 그가 보기에, 오늘날 금융의 역할은 가톨릭교회의 역할과 비슷했다. 지배 권력과 관계하면서 때로는 고개를 숙이고 때로는 고개를 빳빳이 쳐드는 막후의 힘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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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막강한 힘을 뿜던 종교의 힘이 자본의 힘에 밀려났다. 밀려난 종교의 자리를 자본에 내어주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도덕이 안쓰럽기까지 한 시대이다. 그럼에도 도덕의 힘은 만만치 않다. 난 그렇게 믿고 싶다.


전문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횔덜린의 말을 인용해서 독일에는 사람이 없고 직업만 있다고 설파했다. “어느 누구도 좀 더 고귀한 통일성에 대한 감각 없이는 자신의 직업에서 무언가를 성취해 낼 수 없습니다. 특히 금융가들이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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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없고 직업만 있다는 이야기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다. 과거의 영주나 귀족 대신 상위 계층을 이루는 직종을 갈망하는 시대의 흐름 말이다. 그 중심에 자본이 자리한 것을 부인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투치는 다만 심각하게 부당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고 느꼈다. 그의 소신에 따르면, 잠을 잘 자는 것은 외교관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였다. 그것이 모든 성공의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을 잘 때는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되었다. 그랬기에 디오티마의 말은 심각한 도전처럼 느껴졌다. 아내가 변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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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표현 대로 잠은 하루의 죽음이자 부활이다. 인간은 잠을 못 자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다. 불면은 파멸의 지름길이다. 자본이 앗아간 것 중 하나가 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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