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뷰 상자

제2부 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13)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1 -문학동네

by 유병천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45. 두 산봉우리의 조용한 만남


인간은 중심을 잃고 흔들리지 않기 위해 줄타기 광대처럼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삶을 뚫고 나아가 이미 살아온 것들을 뒤에 남길 때 아직 살아야 할 것과 이미 살았던 것은 하나의 벽을 만들어낸다. 그 길은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음 내키는 대로 앞뒤로 꿈틀꿈틀 움직이면서 항상 자기 뒤에 휑한 공간을 남기는 나무속 벌레의 길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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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기 위한 인간의 중심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만의 경험과 생각으로 만들어진 가치관이 아닐까. 변하지 않는 가치관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긴 할까? 가치관의 변화로 인해서 벽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 같다. 오늘의 내가 과거의 나를 돌아볼 때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토록 지키려고 노력했던 가치관도 지나고 나면 휑한 공간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의 생각과 예감과 감정에는 당연히 이 영혼이 늘 함께한다. 그 보완적 방식은 각자의 기질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젊을 때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정말 올바른가 하는 불안감의 형태로, 늙어서는 자신이 본래 원했던 것을 얼마나 조금 했는지에 대한 놀라움의 형태로, 그 중간의 연령대에서는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을 세세하게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멋지고 유능하고 착실한 인간이라는 위안의 형태로, 혹은 세상에도 어차피 본래의 모습으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결국 자신이 그르친 모든 것도 정당한 균형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위안의 형태로 함께한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넘어 자신에게 없는 부분을 주머니 속에 넣고 있는 신을 떠올린다. 여기서는 사랑만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두 번째 반쪽이 커나간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전에 늘 무언가가 빠져있었던 것 같은 바로 그 지점에 서 있는 듯하다. 거기서 영혼들은 서로 등을 맞댄 채 하나가 되고 스스로를 잉여의 상태로 만든다. 그 때문에 사람은 대부분 젊은 시절의 절절한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영혼의 부재를 더는 느끼지 못한다. 물론 이른바 그런 어리석음이 있기에 감사하게도 사회적 기능이 순탄하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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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놀라움, 실망, 허무, 위안 그리고 사랑. 삶을 관통하는 언어들 속에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관한 의문이 다가온다. 아마도 평생을 이런 의문을 마주하면 살게 될 것 같다. 마음속에 사랑을 잃어버린 삶이 되지 않도록 열정에 불을 지피길 바랄 뿐이다.


46. 영혼이라 불리는 커다란 구멍을 채우는 최선의 수단은 이상과 도덕이다


인간은 최대한 빨리 혼란스러운 영혼의 과도기를 건너버린다. 젊은 시절에 종종 있는 일처럼, 종교적 의심으로 괴로우면 당장 불신자들을 탄압하는 일로 넘어가고, 사랑으로 고통스러우면 결혼으로 선회하고, 자신을 열광시키는 다른 무언가가 생기면 그 불덩이를 위해 살기 시작함으로써 그 불덩이 속에서 지속적으로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는 곧, 인간은 하나의 내용과 충동이 필요한 일생의 많은 순간을 이상적 상태에서 보내는 대신 이상적 상태를 위한 활동들로 채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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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 상태에서 보내는 대신 이상적 상태를 위한 활동들로 채운다는 이야기에 공감한다. 그 활동들이 후회를 남기기도 하지만, 만족이라는 감정을 마주하는 경우도 있을 테니. 만족을 모르는 삶은 결코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


47. 분리된 모든 것을 아른하임은 한 몸에 갖고 있다


우리 젊은 애들이 꿩과 멧돼지 사냥을 다니고, 말을 타고, 예쁜 처녀애들을 쫓아다니는 거야 어쩌겠나? 젊어서 그러는 걸 뭐라 할 사람은 없지. 하지만 옛날에는 그 가정교사들이 젊은 애들의 에너지를 꿩 사냥뿐 아니라 정신과 문화를 키우는 일에도 쏟게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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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에 비해 폭발적으로 늘어난 미디어 속에서 젊은이가 정신과 문화를 키우는 일에 에너지를 쏟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 것 같다. 너무 많은 가치관과 판단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돈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씁쓸하다.


48. 아른하임이 유명한 세 가지 이유, 그리고 전체의 비밀


그들은 세상을 군함과 총칼, 권력자, 그리고 경제에 무지한 외교관들에게 맡기는 대신 수요와 공급의 자유로운 유희에 맡겨놓으면 훨씬 좋은 세상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다만 이 세상은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시하는 삶을 기사도와 국가적 신조보다 저급하게 보고, 국가적 사명을 개인의 일보다 도덕적으로 더 가치 있게 여기는 선입견이 여전히 지배적이지만, 그럼에도 경제계 거물들만큼은 늘 그런 믿음에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공익이라는 명분 아래 총칼로 관세협정을 체결하거나 파업 노동자에게 군대를 투입하는 상황조차 자기들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철저히 활용했다. 바로 여기에 사업이 철학으로 통하는 길이 있었다. 만일 철학이 없다면 오늘날 타인에게 감히 해를 끼칠 수 있는 사람은 범죄자들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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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속성에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애덤스미스가 이야기한 시장의 논리는 인간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변화한 시대를 살아가며 인간의 중심이란 과연 어떤 것일지 의문이 생겼다. 거기에서 우린 순응이나 반항의 태도를 보이며 자신이 믿는 가치관을 주장하며 살아간다.


무엇이든 사람들의 귀에다 대고 같은 말을 반복하면 나중에는 그것을 사실로 믿게 되는 법이다. 어쨌든 아른하임 성공담의 기본 패턴은 어디서나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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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세뇌, 가스라이팅 등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가 다를 뿐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살아간다. 세계의 판단은 결국 개인의 생각 속에 존재한다고 말했던 철학자가 있던가? 영향력이 큰 사람의 말을 더욱 믿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아른하임의 말이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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