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1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타고 다니던 더러운 짐수레 밑에서 절망도 함께 굴러갔다. 이윽고 어떤 본능에 이끌려 도피하듯 제국 수도에 도착했을 때, 더는 쏟을 눈물도 남지 않은 그녀의 눈에 이 도시는 자기가 죽으려고 뛰어드는 거대한 불덩이 벽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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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은 라헬이 제국의 수도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감정이다. 현대의 삭막한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도 위기를 만나면 똑같은 심정이 아닐까.
양친의 집에서 배운 유대식 기본 교육과 탈무드의 지혜로운 격언은 분노 속에서 다 잊어버렸다. 사실 그런 것들은 꽃이 흙과 공기에서 영양분을 흡취할 때 숟가락과 포크를 사용하지 않듯 불필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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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티마의 시종이 된 라헬에게 어릴 적 배웠던 유대식 교육과 탈무드의 격언이 소용없다고 이야기한다. 윤리나 가치관도 상황마다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디오티마에겐 디오티마의 고민과 문제해결 방법이 있고, 라헬에겐 라헬의 고민과 문제해결 방법이 있을 뿐이다.
“각하 자리에는 팔걸이의자를 갖다 놓았니? 내 자리에 작은 은종은? 서기 자리엔 종이를 열두 장 갖다 놓았지? 라셸, 서기 자리엔 연필을 여섯 자루 둬야 해, 세 자루가 아니라 여섯 자루.” 라헬은 주인이 질문할 때마다 자신이 이미 처리한 일을 속으로 일일이 꼽아보았다. 마치 이 일에 목숨이 걸린 것처럼 야망의 짜릿한 전율에 깜짝 놀라면서. 티오티마는 가운을 걸친 채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녀가 ‘라셀’을 교육하는 방식은, 어떤 일을 하거나 그만둘 때 이 모든 것을 단순히 개인 사안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그것의 보편적 의미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만일 라헬이 유리잔을 하나 깨면 디오티마는 ‘라셀’에게 이렇게 일렀다. 피해 자체는 경미하지만, 이 투명한 유리잔이 일상의 자잘한 의무의 상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고. 우리의 눈은 높은 곳만 바라보려고 하기에 그런 자잘한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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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하녀에게 교육시키려는 것은 무엇일까? 난이도 측면에서 아주 하찮은 일에 라헬은 꼼꼼히 집중한다. 실제 회의 때 서기의 연필이 과연 여섯 자루나 필요할까? 디오티마가 라헬에게 강조하는 것은 업무가 아니라 신분 차이에 의한 질서가 아닐까.
보통 사람들은 복잡하게 뒤엉킨 그런 것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살다가 죽는다. 어떤 면에서 그건 축복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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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속담이 있다. '모르는 게 약이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관심이 많은 사람은 타인의 생각이나 세상의 현상에 무관심하다. 세상이 자신에게 어떤 제약이나 피해를 줄 때면 몰라도 말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단순하게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일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는 말이다.
“사람들이 종사하는 직업은 수천 개에 이르고, 저마다 지혜가 담겨있죠. 하지만 그 모두에 공통되는 보편적인 인간 요소를 찾자면 단 세 가지만 남습니다. 어리석음, 돈, 그리고 기껏해야 약간의 종교적 기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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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마다 자신만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일에 관하여 열정적으로 말한다. 대본 없이도 이야기를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이다. 직업이 세분화되고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정말 세 가지의 요소만 남을까? 어리석음, 돈, 종교적 기억.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올바른 활동과 시간은 비밀스러운 힘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조각상과 그것이 속한 공간의 관계처럼, 혹은 투창 선수와 보지 않고 던져도 명중되는 과녁의 관계처럼. 이미 울리히는 아른하임에 대해 많이 듣고 많이 읽었다. 아른하임이 쓴 어느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거울을 보면서 양복의 매무새를 점검하는 사람은 두려움 없이 행동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기쁨을 위해 만들어진 거울이 불안의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흐르지 않는 우리 행위들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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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른하임과 울리히가 만난다. 아른하임은 자본주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삶의 방향을 자본주의의 흐름에 맞춰간다. 그런 흐름 속에 어떤 특성대로 사는 것을 거부하는 울리히의 관점과 아른하임의 관점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궁금해진다.
우리의 정부 부처들은 그 주요 관점에 따라 세계를 종교, 교육, 무역, 산업, 법 등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 부처의 위임을 받은 사람을 수장으로 하고, 해당 분야의 법인과 시민 대표들이 보조하는 위원회들을 구성하기로 결정을 내린다면 세상의 주요한 도덕적 힘들을 체계적으로 모을 수 있는 하나의 조직이 필요합니다. 도덕적 힘들이 흘러들어오고 걸러지는 조직 말입니다. 이 조직을 총괄하는 역할은 중앙위원회가 맡고, 몇몇 특별위원회와 소위원회가 중앙위원회를 보조할 겁니다. 예를 들어 홍보위원회나 재정위원회 같은 것들이 되겠죠.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위원회들과의 지속적인 협의 속에서 기본 이념을 계속 다듬어나가는 정신위원회의 설립을 맡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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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티마의 주장은 위원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과거의 정부의 모습은 세분화되진 않아 보이지만, 큰 흐름은 현대와도 비슷한 것 같다. 다양한 위원회의 발달이 이미 100년 전부터 유행했던 것 같다. 디오티마가 맡고 싶다는 정신위원회가 특이해 보인다. 이념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유럽 국가 패밀리 내에서 그런 과시는 결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트라이치케가 말했듯이 국가의 이념은 힘의 이념입니다. 그리고 국가는 민족들 간의 생존 투쟁에서 자신을 지키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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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회의에 참석한 슈툼 장군의 말이다. 이 말은 군인의 관점에서는 과거나 지금이나 이어져오고 있는 것 같다. 국가의 이념은 힘의 이념이라고 생각하는 장군의 생각에 디오티마는 화가 난다.
폐하의 뜻이라는 매개물이 있기는 하지만 백성들 스스로 지극히 가치 있는 목표를 설정하게 하는 장점이 있었다. 이는 백작의 특별한 요구로 이루어진 결의였다. 이는 겉으론 단지 형식상의 문제로 비칠 수 있지만, 백성이 두 번째 헌법적 기구의 동의 없이 단독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절차로 볼 수 있었다. 설사 백성들이 이 기구를 존중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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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일부러 만든 이념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백작은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인 운동이 되길 희망한다. 과연 정신회의에서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시킬 수 있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