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뷰 상자

제2부 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19)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1 -문학동네

by 유병천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63. 보나데아가 환상을 보다


그것은 곧 모든 인간적 상황에서 자신이 왜 그 상황에 묶일 필요가 없는지는 알지만, 정작 무엇에 묶이고 싶은지는 모르는 것이 아닐까? 그를 사로잡은 이 독특하고 작은 감정의 물결이 다시 해체되는 불행한 순간에는 그도 자기 자신에게 모든 사물에서 두 측면을 발견하는 능력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지 모른다. 그 능력은 거의 모든 동시대인들의 두드러진 특징이자, 울리히 세대의 속성을 형성하거나 그 세대의 운명이기도 한 도덕적 양가감정이다. 세계와 울리히의 관계는 옅고 그늘지고 부정적이었다.
-410


하나의 가치관을 믿고 사는 사람에겐 울리히가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다. 많은 가능성을 상정하고 상상하더라도 이슈가 되는 두 가지 상반된 견해에 치우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얼룩말과 가젤 중 누가 빠르냐는 질문에는 두 동물 간의 비교만 있을 뿐이다. 표범이나 사자는 그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64. 슈툼 폰 보르트베어 장군이 디오티마를 방문하다


유명한 철학자 트라이치케의 말을 반복했다. 국가는 민족들 간의 생존 투쟁에서 자신을 지키는 힘이다.
-414


국가를 논할 때 힘의 논리는 자주 등장한다. 인간을 평화를 원하는 존재가 아닌 침략이 가능한 존재로 바라봤을 때 힘의 논리는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 인문학을 공부하고 평화만이 아름다운 삶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는 디오티마에게 슈툼 장군은 군인의 관점을 이야기한다.


보이지 않는 늑대가 그녀의 울타리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이제 이념의 힘으로 그 늑대를 쫓아버릴 시간이 되었다고 이렇게 해서 디오티마는 장군의 방문 이후, 애국운동의 내용을 견실하게 채워줄 뛰어난 지성들을 최대한 빨리 불러 모으기로 결심했다.
-415


디오티마에게 환상을 가지고 있는 슈툼 장군과의 대화 이후 디오티마가 결심하지만, 세상은 디오티마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 같다.


65. 아른하임과 디오티마의 대화


“난 국외자인 당신이 잘 모를 수밖에 없는 영역들의 관련성을 알려주고 싶어요. 사업과 문학의 관련성이죠. 물론 내가 말하는 건 거대한 의미의 사업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내게 운명처럼 주어졌던 세계 사업 말이죠. 사업은 문학과 유사해요. 비합리적이고 신비스러운 측면이 있다는 말이죠. 아니, 사업에는 그런 면이 특히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돈은 그 어떤 것보다 비정한 권력입니다.”
-416


사업과 문학이 유사하다는 이야기에는 적극적인 공감을 한다. 회사의 목표를 이윤추구라고 정의 내리는 사람에겐 다소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다.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시장 혹은 고객은 사람의 생각 속에 자리하고 있다. 물리적인 위치로 시장을 정의하는 사람과는 다른 관점이다. 사람의 생각 안에 존재하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문학은 미래를 제시하는 청사진이 될 수 있다. <특성 없는 남자>도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소설이 사업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 감정, 이성, 철학, 경영, 자본, 정신, 연애, 부부관계 등 거의 다루지 않는 분야가 없는 이 책에서 사업이 배울 점은 무궁무진하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즐거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입니다. 돈을 가진다는 것은 사실 어마어마한 책임을 진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자기 운명을 전부 나한테 맡길 만큼 내게 의존하는 그런 무수한 인간들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라인강변의 한 중소 도시에서 쓰레기수거 사업을 시작하셨던 제 조부님에 대해 말씀드리죠.”
-416~417


돈이 책임이 되는 과정을 우린 잘 알지 못한다. 돈으로 유용한 물건을 살 수 있고, 맛있는 음식을 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다시 말해서 소비의 관점에서는 어마어마한 책임을 진다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돈이 약속이 되는 순간 책임이라는 단어로 탈바꿈하게 된다. 약속에 대한 대가로서의 돈은 무시무시한 힘을 갖게 된다.


사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우주니까요. 내가 가끔 경영진과 대화를 나눌 때 언급하는 것들이 얼마나 비상업적인 문제인지 아신다면 아마 깜짝 놀랄 겁니다. 예를 들어 예술 문제, 도덕 문제, 정치 문제 같은 것들이지요.
-418


실제 경영진의 대화는 현업에 관한 이야기가 차지하는 시간은 매우 짧을 수 있다. 시장의 흐름, 말하면 고객 생각의 흐름을 논하는 시간이 더욱 많기 때문일 것이다. 사업을 영위하는 입장에서는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잘못된 판단은 사업 자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66. 울리히와 아른하임 사이에 약간 순탄치 않은 기류가 흐르다


“오랜 고심 끝에 인류의 역사에서는 자발적 후퇴란 없다고 깨달으신 듯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에겐 쓸 만한 전진도 없다는 게 난감한 일이죠. 이렇게 말씀드려도 된다면,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면서 현재의 순간을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느끼는 이상한 상황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421


라인스도르프 백작의 이야기를 하며,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에서 형용사를 붙여 위대한, 진정한 무언가를 만들려는 시도가 어떤 의미를 만들어낼지 궁금할 따름이다.


세계는 매 순간 어느 방향으로든 바뀔 수 있습니다. 정해진 방향이 없죠. 그게 세상의 속성입니다.
-423


정해진 방향 없이 변할 수 있는 것이 세상이다. 21세기에 더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예상도 틀렸다. 사회가 발전하면 더욱 행복할 거라는 예상도 틀렸다. 자연은 토네이도, 해일, 폭우, 폭염, 가뭄 등 다양한 형태로 다가오고 인간은 이것에 대응할 힘을 갖고 있지 않다. SF영화에서처럼 지구를 버리고 우주로 도망가는 것은 현실감이 없다. 지도자, 이념, 시대의 흐름에 무관심한 세대라고 하더라도 누군가 틀어버린 방향에 의해 삶이 달라지는 것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자잘한 장사치들은 끊임없이 계산하길 좋아하니까. 어쨌든 우리는 정말 성공적인 착상에 대해선 어떤 계산도 하지 않는다. 정치인이나 예술가도 그런 식으로 성공을 거둔다.’
-424


장사꾼, 사업가, 예술가를 동일한 시점으로 관찰하면 다른 점을 발견하기란 매우 쉽다. 최근에는 모든 직군을 돈의 잣대로 평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훌륭한 예술가라고 해도 돈이 없으면 무시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오늘날 정신은 삶이 제기한 커다란 사명을 저버린 탓에 현실 발전의 힘없는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고요. 그러면서 요즘 예술이 어떤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지, 교회 안에서 얼마나 하찮은 것들이 난무하는지, 학자들의 시야는 얼마나 좁은지 보라더군요. 게다가 그사이 지구가 진짜 분열되고 있다는 점도 유념하라고 했죠. 나한테 하고 싶었던 게 바로 그런 이야기였다고 하더군요!”
-425


아른하임의 관점에서 울리히를 바라보면 힘없는 구경꾼일 수도 있겠다. 교회가 몰락하고 자본이 많은 것을 집어삼킨 시대에 어떤 특성도 가지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 지구가 분열되고 있다는 알림을 주고 있다.


“그 사람이 나에 대해 이런 말도 하더군요. 자기가 보기에,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모종의 보편적 사유체계 때문에 행위의 삶을 거부하는 사람 같다고요. 그 사람 말을 좀더 들어보시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더군요. 나는 마치 나를 위해 준비해둔 침대는 놔두고 그 옆의 바닥에 눕는 사람 같다. 그건 에너지 낭비다. 그러니까 물리적인 측면에서 비도덕적이라는 거죠. 그러면서 오늘날 큰 규모의 정신적 목표들은 기존의 경제 구조, 정치 구조, 특히 지적 권력 구조를 이용하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몰아세우더군요. 그 자신이 보기에 그런 구조를 등한시하지 않고 이용하는 것이 윤리적인 행위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아른하임은 나를 방어자세, 그것도 아주 경직된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는 활동적인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 사람은 나한테 존중을 받고 싶은 무언가 섬뜩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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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히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나를 준비해 둔 침대를 마다하고 바닥에 누워서 자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기존의 질서를 무시하고 무언가를 이룰만한 에너지가 있을까? 울리히의 시대보다 100년이 더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더더욱 요원해 보인다. 아른하임이 울리히한테 존중받고 싶은 무언가 섬뜩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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