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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Aug 15. 2023

제2부 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23)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2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84. 일상의 삶에도 유토피아적 성격이 있다는 주장


‘나는 철저한 체계로 이루어진 책이 아니라 모순을 가진 인간이다!’ 자네는 왜 더 나아가지 않지? 우리의 이념을 위해 뱃살을 빼라고 요구할 수도 있잖아? 나는 자네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 ‘인간은 하찮은 진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야!’ 우리가 팔을 뻗고 다시 오므리는 것, 우리가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지 왼쪽으로 틀지 모른다는 것, 우리가 습관과 선입견,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전력으로 우리의 길을 간다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 인간을 이루는 본질이야. 결국 자네가 말한 것은 현실적 척도에다 살짝 대보기만 해도 기껏해야 문학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드러나지!”
울리히는 시인했다. “다른 모든 예술과 삶의 가르침, 종교 같은 것들도 포함시켜 그렇게 이해해도 괜찮다면 나는 그와 비슷하게 주장하고 싶어. 우리의 실존은 전적으로 문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이야!”
“진심인가? 그럼 구세주의 선함이나 나폴레옹의 삶도 문학이라고 부르겠다는 건가?” 발터가 소리쳤다. 그러나 곧 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좋은 패를 손에 쥔 사람의 차분함으로 울리히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자네는 마치 통조림 야채를 신선한 야채의 존재 이유라고 말하는 사람 같군!”
“맞는 말이야. 게다가 이렇게 말해도 돼. 나라는 인간은 소금만으로 요리를 하려는 사람 같다고 말이야.” 울리히는 차분하게 시인했다.
-48


발터와 울리히의 대화가 흥미진진하다.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삶을 대하는 관점에 따라 친구도 언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회사원이라는 특성을 선택한 남자가 특성 없는 남자에게 자신이 선택한 가치관에 관하여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하지만, 자신을 소금만으로 요리를 하려는 사람 같다고 말한 울리히는 정말 자존감이 높아 보인다. 타인의 주장에 논리적인 반박을 할 능력을 지녔음에도 오히려 자신을 더욱 낮추는 방법으로 응대한다. 어쩌면 상대는 이런 태도에 더욱 화가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우리의 실존은 전적으로 문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비유는 정말 근사하다.


그녀는 남편에게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음악은 그냥 있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에요. 사람들은 체험을 자기에게 끌어당겼다가 한 호흡으로 다시 늘어놓아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상품처럼 팔아먹는 소매상이 아니에요!”
-49~50


예술이 자본과 비교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클라리세의 말처럼 음악이 주는 즐거움이 정말 크다. 살아있는 동안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커다란 축복이다. 삶에 지쳐 쓰러지기 전에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잠을 자야 한다. 평온한 잠을 선사하는 음악이라면 그것은 당신에게 최고의 자장가이자 하루만큼의 선물이다.


“모든 위대한 책에는 개인의 운명을 사랑하는 정신이 숨 쉬고 있어. 개인은 전체가 자신에게 강요하는 형식과 타협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여기서 쉽게 결정 내릴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하게 돼. 개인의 삶은 단지 재현만 가능할 뿐이야. 모든 문학에서 의미를 추출해 보면, 개별적인 예시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경험과 일치하는 무한한 부정을 보여줄 거야! 문학을 사랑하는 사회의 토대가 되는 기존의 모든 법칙과 원칙, 규정들에 대한 부정이지. 신비스러움을 담은 시는 수천의 일상적 단어에 묶인 세계의 의미를 가운데로 뚝 잘라 풍선처럼 하늘로 날려 보내. 흔히 하는 말로 그것을 미라고 부른다면 미는 지금껏 존재한 그 어떤 정치적 혁명보다 말할 수 없이 무자비하고 잔인한 혁명이 될 거야!”
-51


문학이 주는 매력은 상상력에 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동영상이나 이미지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상상력이 줄어든다. 상상력이 줄어든다는 말은 다른 대상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해진다는 말과도 이어진다. 다시 말하면 리터러시(Literacy)가 낮아진다. 상황을 단순화하고 상태만을 쫓아가는 세상이란 얼마나 잔인한 것일까. 그런 사람이 지배권을 가질 때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까.


“그러면 그 사람은 뭔가 하기를 거부할 거예요!” 울리히 대신 클라리세가 대답했다. “그게 바로 능동적 수동주의예요. 인간은 상황에 따라 그런 능력을 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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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사이인 클라리세와 발터 그리고 친구인 울리히. 발터와 울리히의 대화에 클라리세는 울리히 편을 자주 든다. 문학에서는 둘 사이에 매개자 혹은 중개인이 개입하여 갈등을 유발하는 상황을 자주 연출한다. 갈등은 정말 오래된 소재이다.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특성 없는 남자 울리히를 클라리세가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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