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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Aug 12. 2023

제2부 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22)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2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80. 느닷없이 지성회의에 모습을 나타낸 슈툼 장군을 알게 되다


전쟁을 선호하는 민간인이 있다면 평화의 길을 사랑하는 장교가 없으라는 법이 있을까? 카카니엔에는 그런 장교가 많았다. 그들은 그림을 그리고, 풍뎅이를 수집하고, 우표 앨범을 만들고, 세계사를 공부했다.
-12


슈툼 장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말을 잘 타지 못하는 기병이었던 슈툼 장군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맡게 된 후 그의 능력을 인정받는다. 자신의 재능을 탓하며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면, 슈툼은 결코 장군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슈툼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디오티마는 자신이 초대하지 않은 군인이 모임에 참석한 것에 당황한다. 슈툼을 누가 초대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는다.


81. 라인스도르프 백작이 현실 정치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울리히가 협회들을 설립하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협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육상스포츠협회와 수상스포츠협회에서부터 절주협회와 음주협회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한마디로 하나의 협회에 그 반대 협회까지 수두룩했다. 각각의 협회는 자기 회원들의 활동을 장려하면서 상대 회원들의 활동을 방해했다. 마치 모든 사람이 최소한 하나의 협회에는 가입한 느낌이었다.
-19


정말 많은 협회나 위원회가 있다는 것은 자신의 견해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모아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과 소통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말하는 건 자네가 아직 모르는 이야기일 수도 있네. 자네는 아직 젊으니까. 어쨌든 현실 정치란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아니라네. 대신 대중의 자잘한 소망을 들어주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지.”
-20


이러한 라인스도르프 백작의 불편한 이야기를 보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가 생겨날 수 있다. 자잘한 소망을 들어주면서 라인스도르프가 얻고자 하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82. 클라리세가 울리히의 해를 요구하다


“내 생각은 달라요. 생각할 수 있는 건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33


클라리세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이 미덕일 경우가 더욱 많지 않은가.


“알았어, 이제 얘기해 주지. 내가 왜 아무것도 안 하는지.” 그는 이렇게 시작하더니 곧 다시 입을 다물었다.
울리히의 손길을 느끼는 순간 다시 평소의 상태로 돌아간 클라리세가 울리히를 채근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유는…… 당신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는 이야기를 하다 말고 담배를 꺼내 천천히 불을 붙였다.
-35


울리히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대답이 궁금해서 다음 장을 급히 넘길 수밖에 없다.


83. 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 또는 사람들은 왜 역사를 지어내지 않을까?


그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신’이라는 말을 꺼내고 싶은 야릇한 충동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가 하려던 말은 이랬다. 신은 결코 세계를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세계는 신이 모종의 이유에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상징이자 비유이자 관용구다. 물론 항상 불충분하기만 하다. 그래서 우리는 신을 말에서 추측해서는 안 되고, 신이 부과한 수수께끼의 답을 우리 스스로 풀어야 한다.
-36


<특성 없는 남자>의 길고 긴 2부의 제목이기도 한 '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에 관한 대목이다. 83장은 전부 옮기고 싶을 정도이지만, 독자들을 위해서 일부만 옮긴다.


그는 이것 말고도 할 말이 더 있었다. 일반적인 해답은 나올 수 없고 부분적인 답들의 조합으로 일반적인 답에 접근하는 수학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아마 인간 삶의 문제도 결국 이런 수학 문제와 비슷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을 것이다. 한 시대를 수백 년이나 수천 년, 혹은 학창 시절부터 손주가 생길 때까지로 봐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우리가 한 시대라고 부르는 것, 즉 무질서하게 흘러가는 상태들의 넓은 강을 대체로 개별적으로 보면 오류에 그치는 불충분한 답들의 무계획적인 병렬로 볼 수 있고, 인류는 그런 불충분한 답들을 종합하게 되면 비로소 올바른 전체 답에 이를 수 있다.
-37

한 시대라는 정의는 어떻게 내릴까? 농경시대, 산업시대, 인공지능의 시대 등 그 시기는 지역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시대이든 질서와 무질서의 대립이 있었을 것이고, 승자가 질서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질서가 되면 역사가 그려지고 그걸 믿고 사는 것이 인류가 아닐까.



디오티마의 애국운동은 왜 터무니없을까?

대답 하나: 세계사도 분명 다른 모든 역사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생성되기 때문이다. 책을 쓰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새로운 것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다른 사람 것을 베끼기 바쁘다. 이것이 모든 정치인들이 생물학 같은 학문 대신 역사를 배우는 이유다. 책을 쓰는 사람들의 상황이 그렇다.

대답 둘: 대부분 역사에는 저자가 없다. 역사는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에서 생겨난다. 그것도 자잘한 이유에서. 고딕 시대의 인간이나 고대 그리스인에서 현대 문명인이 나왔다고 믿는 것은 이런 생각에 맞지 않는다. 식인종도 될 수 있고 순수이성비판도 쓸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신념과 특성이 같아도 상황에 따라 다른 걸 만들어낸다. 매우 큰 외적 차이는 매우 작은 내적 차이에서 나온다.
-41


울리히가 바라보는 역사는 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세계에 관한 내용을 적어둔 것이 아닐까? 다음 소절에 역사는 바로 우리의 삶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일상생활에서도 소중한 사람에게 짜증을 내거나 싫증을 내다가도 그 사람이 다치기라도 하면 관심이 폭증한다. 상처가 아물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 변치 않는 마음이야 말로 기적에 가깝다는 몽테뉴의 말이 생각난다.


제가 역사라고 말하는 것은,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바로 우리의 삶을 가리킵니다. 인간은 왜 역사를 만들지 않느냐는 물음 자체가 매우 불쾌하리라는 점을 나는 처음부터 인정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왜 다쳤거나 등뒤에서 불이 났을 때만 동물처럼 적극적으로 역사를 공격할까요? 한마디로 인간은 왜 비상시에만 역사를 만드는 걸까요? 그리고 그게 왜 불쾌하게 들릴까요? 그게 인간은 삶을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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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히의 말처럼 우리는 삶을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더라도 그에 맞서 정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의지를 가지고 혹은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일까? 그래야만 역사를 만들 수 있는 것일까? 사람마다 하나의 역사가 존재한다고 했을 때 이미 우리 지구에는 70억이 넘는 역사가 존재하는 것이 된다. 과거에 살다 간 사람들의 역사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몇몇 기록된 과거를 역사라고 생각하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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