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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Nov 05. 2023

제3부 천년제국으로(범죄자들)(2)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3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4. 한 친구가 있었다


사람이 엄동설한의 시기에 들어서면 문학이 고개를 내민다. 열일곱 살 이후로 시를 써본 일이 없는 사람이 일흔일곱이 되면 불현듯 시를 쓰게 된다. 유언장이라는 이름의 시를.
-53


죽음 앞에서 유언장에 어떤 시를 쓸까? '어린 왕자'같은 명작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살았다.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랑하다 가고 싶다. 아름다운 지구별에서 좋은 인연을 만났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사랑의 표현이 부족함을 용서해 달라.


“선대인은 오래 함께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생길 수밖에 없는 자잘한 의견 차이를 너무 과장해서 생각했어요. 워낙 예민한 법 감각을 가진 친구다 보니 남들로부터 어떤 비난도 받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 거라고 확신해요. 내일 선대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려고 교수들이 많이 오겠지만 그들 중에 선대인만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두 사람의 대치는 이렇게 타협적으로 끝났다. 심지어 슈붕은 떠나기 전, 만일 울리히가 학계로 나갈 뜻이 있다면 아버지의 친구들을 믿어도 된다고 장담했다.
-55


울리히의 아버지와 견해가 달랐던 슈붕 교수는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믿는 사람 같다. 친구이면서 라이벌이 있는 삶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모험을 즐기다 떠났다.


5. 그들이 부당한 짓을 하다


‘더 이상 나 자신과 상관없다는 이 말속에는 어쩐지 인간은 살면서 언제가 됐든 자기 자신과 완전히 하나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담겨 있는 것 같아!’
-56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양가감정과 이율배반 속에 살아가는 인간은 과연 온전히 자기 자신과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생각나는 구절이다. 우리는 자신의 변화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울리히가 인용했다. “오성과 이성의 단계적인 발전 과정에서 욕망 또는 충동을 숙고의 형태로, 이어 결심의 형태로 굴복시키는 것이 의지야!”
-58


의지 앞에 제어되는 욕망보다 욕망에 굴복하는 의지가 더 많지 않나 생각해 본다.


‘비겁한 이들은 죽음에 앞서 여러 번 죽는다.
용감한 이들은 단 한 번 빼고는 죽음을 치르지 않는다.
내가 들은 기적 가운데
정말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죽음이, 필연적인 종말이
언제든 자기가 원할 때 찾아온다는 걸 알면서도
인간이 그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하가우어는 그 학생의 번역을 이렇게 수정했어요. 그 공책을 내가 직접 봤죠.
‘비겁한 자는 죽기 전에 벌써 여러 번 죽는다!
용감한 이들은 죽음을 단 한 번 치를 뿐이다.
내가 들은 모든 기적 가운데
가장 큰 기적은……’ 이렇듯 남편은 슐레겔의 옛 번역에 따라 계속 수정해 나갔죠!
-61


번역에서도 사람의 성향이 드러나는 것을 보여준다. 아가테가 두 번째 남편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지점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한 학생이 번역했다는 문장이 훨씬 와닿는다.


6. 늙은 신사가 마침내 고요히 잠들다


모름지기 죽음 앞에서 개인적인 생각은 알맹이 없는 밋밋한 맛이 난다.
-70


인간은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근원적 두려움이라고 표현하는 죽음 앞에서 개인의 생각이란 어느 정도의 무게가 있을까? 한 줌의 재만큼의 무게 정도일까? 이어지는 의지가 있다면, 그 무게는 엄청나게 커다란 것일까? 그렇다면 남겨야 할 것은 의지가 되는 것일까?


7. 클라리세에게서 편지가 오다


만일 우리 자신을 한번 더 검사하고 우리의 임무를 한번 더 점검할 힘이 있었다면 우리는 항상 필요한 일을 해내면서 불행을 피했을 것이기 때문이죠. 사고는 우리가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두고 멈춰 서는 바람에 일어나는 거예요!
-75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마지막 한 걸음이 그토록 어려울지도 모른다. 거기에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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