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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Jan 14. 2024

제3부 천년제국으로(범죄자들)(15)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3 -문학동네

문학동네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박종대 선생의 번역으로 총 3권에 나누어 출간되었다. 완독 하고 싶은 마음에 읽고 느낀 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21. 네가 가진 것은 신발까지 모두 불속으로 던져버려라


사람들의 삶은 대부분 그렇게 침울하고, 불안하고, 밝음 속에서도 많은 어둠을 갖고 있고, 전체적으로 그렇게 전도되어 흘러가는지 모른다.
-299


'불안' 인간을 표현하는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까. 가장 원초적이고 깊은 두려움인 죽음을 전제로 태어나기 때문이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순수한 즐거움과 거리가 멀어진다. 해맑게 웃는 어린아이의 웃음을 잃어버린 후로 인간은 밝음 속에서도 어둠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로 변하고 만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는 외부 상황의 거울상에 해당하는, 단순하면서도 엄격한 질서 관념을 갖춘 논리적 사고 외에 감정적 사고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감정적 사고의 논리학은(이것을 논리학이라고 표현해도 된다면) 감정과 열정, 기분의 특성과 일치한다. 그래서 이 두 사고의 법칙은 대충 다음 둘의 관계와 비슷하다. 즉 통나무를 사각형으로 잘라 나르기 쉽게 차곡차곡 쌓아놓은 목재 집하장의 법칙과 신비스러운 움직임 및 바스락거림이 있는 어둠에 휘감긴 숲의 법칙 사이의 관계 말이다.
-302~303


나에게 이성과 감정에 관한 사항은 오래 고민한 주제이다. 특히 의사결정의 순간 우리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지 감정적인 판단을 하는지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다. 효용성이 많은 판단의 기준이 되어버린 시대에 살면서 우린 지극히 이성적인 선택을 이어간다고 믿으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이성과 정반대의 선택을 감정적으로 내릴 수 있다. 특히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이 들 때엔 감정적인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고 상대적으로 만족감을 느끼는 일에 감정을 담아 다시 합리화시키기도 한다. 이성과 감정은 서로 분리될 수 있는 명제가 아닌 것 같다. 분석적인 인간도 감정적으로 판단할 때가 있고, 감정적 인간도 분석적으로 판단할 때가 있다. 인간은 이성과 감정을 동시에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누가 더 이성적이고 더 감정적인지 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다만 판단의 합을 보며 그 사람의 성향을 조금 알 수 있을 뿐이다.


사랑, 아이, 아름다운 나날, 즐거운 사교 생활, 여행, 약간의 예술 활동, 이런 좋은 삶은 무척 단순하다. 그녀는 그런 생활의 매력을 알고 있었고, 그 매력에 둔감하지도 않았다. 다만 스스로를 쓸모없는 인간으로 여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는 해도, 타고난 반골 기질 탓에 이 쉬운 길에 경멸감을 품고 있었다. 이런 쉬운 삶은 사기 같았다. 충실한 삶이라는 것은 ‘운이 맞지 않은' 삶이고, 끝에 가서는, 그것도 사실상의 끝인 죽음에 가서는 항상 뭔가가 빠진 삶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305


아가테의 사유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마주하게 되는 질문일지 모른다. '왜 태어났는가?'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안정감, 완전성, 기쁨, 즐거움 등을 집요하게 갈구하다 보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란 문장을 만나게 된다. 아가테는 이런 좋은 삶이 무척 단순하다고 표현한다. 어쩌면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추구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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