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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May 28. 2024

옥천 막걸리

제주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쾌속카페리에 차를 싣고 완도에 도착했다. 스무 살 때 완도에 가본 후 거의 30년 만에 완도에 갔다. 장시간 운전을 위해 배에서 내리자마자 서둘러 출발했다. 완도를 벗어나서 처음 본 것은 두륜산이었다. 물론 운전 중에 내가 본 산이 두륜산이란 것을 알지 못했다. 서울에 도착한 후 지도를 찾아본 후 그 산이 두륜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시 나의 관심사는 등산이었기 때문에 산이 가장 먼저 눈에 띈 것 같다. 언젠가 저 산에 올라 다도해를 바라보는 날을 상상했다. 그 후로 일 년이 지나기 전에 해남으로 여행일정을 잡았다. 2박 3일간 머무르며 최소 두 군데의 산을 오르는 것을 목표로 했다.


막거리를 소개할 때 등산을 따로 떼어낼 수가 없다. 해남의 막걸리를 맛보기 전에 산을 먼저 찾았다. 첫날은 장시간 운전으로 비교적 낮은 두륜산에 오르기로 했다. 두륜산도 만만한 산은 아니었지만, 여행 첫날의 기분 좋은 에너지로 가볍게 오를 수 있었다. 구름이 많았고 바람은 시원했다. 정상에 올라 바라본 다도해는 정말 근사했다. 해남 쪽에 갈 일이 있으면 꼭 한 번 올라가 보길 추천한다.


두륜산에서 바라본 다도해 전경


하산 후 숙소 주인에게 전화해서 식당을 추천받았다. 현지인이 추천하는 맛집이라 정말 맛있게 먹었다. 숙소로 이동하기 전에 하나로마트에 들러 막걸리를 샀다. 그곳에는 해창막걸리와 옥천막걸리 두 종류가 있었다. 해창막걸리는 서울에서도 접했던 막걸리라 한 병만 사고 옥천막걸리는 세 병을 담아왔다. 처음 보는 막걸리라 호기심이 생겼지만, 병에 명인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숙소로 도착했다. 한옥을 예약했고, 앞마당에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잔디 너머에는 항아리가 줄지어 있었다. 주차 공간 바로 옆에는 대봉시가 먹음직스럽게 매달려 있었고 몇 개는 너무 많이 익어서 그런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사온 막걸리를 테이블 위에 놓고 짐을 풀었다. 주인장이 막걸리가 놓인 것을 보고 사과와 무화과를 깎아서 함께 먹으라며 쟁반에 담아왔다. 해창막걸리와 옥천막걸리를 보더니 현지에서는 옥천막걸리를 더 즐겨 마신다고 말했다. 본인도 해창보다 옥천막걸리가 훨씬 좋다고 했다. 과일이 고마워서 한 병을 나누어 드렸더니 흔쾌히 받으셨다. 옥천막걸리를 흔들어 컵에 따라 첫 잔을 마셨다. 등산 후라 그런지 그 맛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달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고, 부드러운 와중에 청량감이 느껴졌다. 그간 마셔본 막걸리 중에 이렇게 균형 잡힌 맛의 막걸리가 있었나 싶었다. 주변에 소개를 했더니 좋은 평가가 이어졌고, 해남 옥천막걸리를 좋아하는 지인이 제법 많아졌다.



해남 한옥 숙소에서 옥천막걸리를 마시며


운전의 피로와 두륜산 산행의 피로를 달래고 다음 날엔 월출산으로 향했다. 언제부터인가 꼭 한 번 오르고 싶은 산이었다. 산의 기운이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전날 흐르더니 월출산 입구에 도착했을 때 비가 내렸다. 70세가 넘은 장모님을 모시고 간 터라 비를 맞고 오르기 부담스러워서 차에서 조금 기다렸다. 다행히 비는 오래 내리지 않고 금방 그쳤다. 설레는 맘으로 월출산 앞에 섰을 때 산의 웅장함에 압도될 정도였다. 멋진 만큼 험했지만, 무사히 정상을 찍고 왔다. 정상비 앞에서 100대 명산을 오르는 일행을 만나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월출산을 100번째 명산으로 오른 사람에게 축하 세리모니도 함께 해주었다. 산 중턱에는 주황색 구름다리가 걸려있다. 영암에는 도갓집 막걸리와 월출산 막걸리가 있다. 도갓집 막걸리에는 물엿이 들어가는데, 개인적으로는 월출산막걸리보다 도갓집 막걸리가 더 좋았다. 무사히 하산한 후 강진으로 향했다. 강진에는 병영막걸리가 있다. 병영막걸리도 깔끔하게 마시기 좋은 막걸리다. 강진에는 선배 작가인 임정자 작가가 살고 있다. 일부러 찾아가긴 먼 거리라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걸었다. 주차 후 흙담 사이를 지나 대문을 두드렸다. 다행히 반갑게 맞아줬고 오랜만에 진돗개 수호도 볼 수 있었다.


웅장한 월출산과 구름다리


월출산 등반이 힘들어서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씻고 일찍 잠들었다. 다음 날 서울까지 올라가야 하는 부담도 한몫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밥을 먹기도 전에 이곳에 또 언제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지도를 열고 두륜산보다 아래쪽에 있는 달마산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출발 당시에 고려는 했지만, 힘들면 지나치기로 했던 일정이다. 다행히 충분한 잠으로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 달마산 최단 거리의 코스로 향했다. 2박 3일 일정 중 이날이 날씨가 가장 좋았다. 밝은 회색의 암벽이 뾰족하게 솟아올라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하산 후 식사를 마치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목포로 향했다. 목포의 관광지에 잠시 들러 주변 마트에서 안 마셔본 막걸리를 담아 서울로 출발했다.


달마산에서 바라본 전경


안타깝게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서해안고속도로에 대형 사고가 있었다. 화물차의 화재로 양방향이 통제된 상황이라 도로는 말 그대로 주차장이었다. 광명 쪽으로 우회하는 길까지 꼬박 1시간을 넘게 차에 갇혀 있었다. 자전거보다 느린 속도로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녹초가 되어버렸다. 해남에서 사 온 막걸리 중 삼산 막걸리가 있었다. 삼산 막걸리도 정말 맛이 좋았다. 참쌀로 빚어서 그런지 해창막걸리보단 깔끔한 맛이었다. 해남에 갈 일이 있으면 옥천막걸리와 함께 꼭 맛볼 수 있길 바란다.



해남, 영암, 목포에서 사 온 막걸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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