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상록

나는 덕후다.

깊이 있는 관심에 관하여

by 유병천

어떤 일에 관심이 생기면 며칠간 하다가 집어치우는 사람도 있고, 단기간 동안 하다가 그만두는 사람도 있고, 장기간 동안 깊이 있게 파고드는 사람이 있다. 장기간 동안 깊이 파고드는 사람을 '덕후'라고 부른다.


덕후라는 말은 한 때 일본에서 유행했던 '오타쿠'란 말에서 따왔다. 특정한 물건이나 영상물, 사람에 관하여 깊이 있게 관심을 갖고 열광하는 사람을 말한다. '오덕후', '십덕후' 등 우리나라에서는 '덕력(열광의 정도)'에 따라 구분하기도 한다. 덕후라는 말을 한 쪽에 치우쳐 사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도 사용하지만, 난 '어떤 일에 관하여 깊이 있는 관심을 오랫동안 가진 사람'이란 말로 사용하고 싶다.


어떤 일이든(그게 사람이든, 사물이든) 관심은 오래가지 않는다. 초반에는 열렬히 좋아하다가 자주 접하고, 오래 접할수록 관심이 줄어든다. 혹은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에도 그럴 수 있다. 물론 관심이 줄어들어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도 있다. 돈을 벌기 위한 일처럼.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등장하는 삼 형제 중 첫 째 '상훈'의 말이 인상적이다.


반평생을 살았는데, 먹고 싼 기억밖에 없어!
-<나의 아저씨> 상훈의 말 중

어쩌면 먹고, 싸고, 자는 일은 관심이 줄어들지 않는 유일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 세 가지를 제외하고 어떤 일에 관하여 관심을 유지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어릴 적 컴퓨터 게임과 만화책에 빠진 친구의 집에 방문한 후 적지 않은 문화 충격을 받았다. 게임 시디를 상처라도 날까 봐 보물 다루듯 하는 모습. 장식장과 옷장을 가득 메운 비닐포장도 벗기지 못한 만화책들. 일본 만화를 보기 위해서 일본어를 공부하는 모습. 한눈에 봐도 '덕후'란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당시 그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난 '덕후'의 세계를 맛볼 수 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나도 모르게 좋아하는 만화의 피규어를 모은 거나 만화에 나오는 대사를 외우는 모습에서 어쩌면 나도 '덕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미 생활을 즐기는 것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 확실하다. 흥미를 금방 잃어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 10년 넘게 즐기는 취미도 있고, 과거에 재미를 느꼈던 것도 깊이 있게 배운 것은 가끔 해도 재미있다. 신기한 건 덕력을 높였던 일이 그나마 잘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이다.


자신의 일에 한 번이라도 만족한 적이 있는가?


'남에게 칭찬받으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 만족스럽게 일하라.' 내가 덕후에게 배운 사실이다. 기간이 3년이든 10년이든 관심이 사라지지 않을 때 꾸준히 한다면 '먹고 싼' 기억 이외에도 좀 더 멋진 기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덕후가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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