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서판에 관하여
그 사람의 언어는 그 사람의 세계이다.
-비트겐슈타인
취업 사이트에 신입 사원 공고를 올리면 정말 많은 이력서가 들어온다. 멋진 동료를 맞이하기 위해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살펴본다. 자기소개서를 잘 쓴 사람은 포트폴리오까지 검토한다. 첫 마주침을 글로 하는 셈이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말이 있다. 사람을 볼 때 외모와 태도, 말, 글 그리고 판단력을 살피라는 이야기다. 아이의 대입을 준비하면서 평가기준에 관한 생각이 뇌를 지나 가슴속까지 파고들었다. 대부분의 대학의 학생부 종합전형 수시모집 요강을 읽어보면 정성적 평가로 신입생을 선발한다고 적혀있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부터 3학년 1학기까지 총 5학기 동안의 성적, 학교생활, 봉사활동 등을 기록한 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기업의 인재 채용방식과 비슷해진 대입을 보면, 왜 학생들이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진정성 있는 도전이 아니라 체험 수준에서 끝나는 일이 대부분이란 점이다. 서류 전형에 통과한 사람은 면접을 본다. 면접에서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자세이다. 인사하는 모습,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모습, 말할 때의 습관 등을 보게 된다. 간단한 자기소개 이후 면접관의 질문이 이어진다. 몇 가지 이야기가 오간 후 면접관 중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한다.
살면서 해본 도전 중 자신이 원해서 해본 도전 중 가장 기억게 남는 건 무엇인가요?
많은 지원자들이 이 질문에서 대답을 망설인다. 학교에 다녔고, 대학에 입학하려고 시험문제를 풀었고, 스펙을 쌓으려 체험을 했고, 학점을 위해 과제를 했고, 취업을 위해 자격증을 땄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도전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이 원해서 해본 도전이 과연 있을까? 간혹 망설이며 대답하는 사람 중에 컴퓨터 게임의 레벨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사례를 말하기도 한다. 차라리 말하지 말지. 교육 정책을 바꿀 수 없는 사람으로 어른들의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십 대 중반까지의 도전이 게임밖에 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일어난다.
면접 중 독서에 관한 질문을 꼭 하는 편인데 책을 즐겨 읽는다고 말하는 지원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대입이나 취업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좋은 태도, 논리적으로 말하기, 좋은 글쓰기, 현명한 판단력은 매우 중요하다. 이걸 늘리기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인데 점점 독서하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소식은 무척 아쉽다. 좋은 콘텐츠는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유익한 내용인지, 가짜 뉴스인지 판단할 능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신언서판. 순서대로 외모, 말, 글, 판단력을 본다는 것은 그만큼 판단력을 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을 먼저 볼 수밖에 없다. 외모를 제외한 나머지는 결국 그 사람의 언어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떤 언어로 자신의 세상을 만들지 스스로 결정한 후 진심으로 도전하면 실패하더라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