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이야기할 뿐. 차라리 꿈을 응원하자.
교육에 있어서 나에게 효과 있는 방법이 반드시 남에게도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없다. 내가 처한 환경에서 좋은 교육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반드시 효과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적절한 방법을 찾아 가르치는 것이 어른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어릴 땐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는 아이로 키우고 싶으면, 아이 앞에서 책을 읽어라. 집안에 TV를 없애고, 책장을 들여놨다. 책의 세계는 TV보다 재미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재미있는 책이 아이에게도 재미있으란 법은 없다. 분명한 사실은 아이들은 책 보다 스마트폰을 더욱 좋아한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폰연일체'란 말까지 나왔을까. 난 이러한 신조어를 반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시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당위성을 부여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렇다. 며칠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저런 신조어에 속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무엇인가 가르치려고 할 때, 내용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남의 것을 흉내 내는 사람이 타인을 가르치려고 할 때 많은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후배를 양성할 때에도 이러한 현상은 쉽게 발견이 된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분야를 가르치는 것은 잘한다. 본인도 흉내를 내고 있거나, 모방하는 수준의 것을 가르치려고 할 때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하다. 어떤 것을 가르치더라도 결과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가르친다는 것은 나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열심히 가르쳤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올 때 '도대체 난 뭘 한 거지?'라는 자괴감에 빠진다.
나는 결코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이야기할 따름이다.
-몽테뉴 <수상록>
수상록에서 몽테뉴가 말하는 것처럼 난 아무도 가르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어설프게 가르치는 것보다 차라리 꿈을 응원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는 일은 아닐까.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