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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Jun 16. 2018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단상

나는 주말 작가다

 작가란 모든 것에 대해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작은 조물주이고, 그래서 한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전지(全知) 전능(全能)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모든 것에 대해 알고 난 뒤에 내 얘기를 시작하리라.
 내가 천부의 재능을 부여받지 못했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내가 위대하게 되지 못하리란 단정으로 불안해하거나 기죽을 필요도 없다. 다만 신앙하는 것이다. 경건하게 예배하는 것이다. 설령 내가 찬란한 우주를 빚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한 송이 향기로운 꽃쯤이야 피울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게 내 모든 걸 바쳐 얻은 것이라면 한 우주에 갈음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문열 (사색 중)


 고개가 숙여지는 글을 만나서 좌절할 때도 있다. 명작을 읽으며 계속 글을 써도 되나? 난 잘 쓸 수 있을까? 그런 고민에도 빠진다. 그러다 글쓰기를 할 때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 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조지 오웰의 에세이 제목이기도 하다. <나는 왜 쓰는가? (Why I write)> 글 쓰는 사람마다 이유가 다를지도 모른다. 난 작가의 길이 과거나 현재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는 지나갔기 때문에 안전한 것이 되었다. 미래는 항상 불안전하다. 역사의 답을 지나간 과거에서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기성세대의 잘못을 들추어내기보다 미래의 희망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것이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힘을 다음 세대에 주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나 과거를 어떻게 할 수 없으면서 불평만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비틀거리며 쓰러져가는 젊음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어쩌면 나의 글쓰기는 저런 생각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중요하다. 어쩌면 우린 젊음에게 이기는 법을 가르치기보단 지는 법을, 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몇 년 전 나이 사십이 넘은 난 열네 살의 아들에게 배드민턴 경기에서 무참하게 졌다. 정말 상대도 안 될 정도였다. 어린 아들에게 배드민턴 경기에 지는 것처럼. 어른은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고 무조건 이기는 것도 아니다. 어른의 숙명적 임무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방향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향하는가. 이걸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만으로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에 살면서 글만 써서 돈을 버는 건 정말 어렵다. 적어도 내겐 불가능처럼 느껴진다. 2012년 1월에 첫 책이 나온 후 총 네 권의 책이 나왔어도 6년 반 동안 책을 통해서 번 돈은 정말 미미하다. 그래도 글 쓰는 것이 숙명인 것처럼 평일에 돈을 벌고 주말에 글을 쓴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서른 살 즈음이었다. 벌써 15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의지'를 전하려고 시작한 글쓰기가 문학을 만나면서 흔들렸다. 동화나 소설을 쓸 때 젊음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거나, 긍정적인 의지를 전달해야 한다며 글을 쓰진 않는다. 이런 고민을 임하 작가와 만나서 인터뷰할 때 토로하고 질문했다.


 -왜 글을 쓰는가? 
"성공한 작가가 되지 못하는 이유 중엔 제가 가진  것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 클 테지요. 지금은 성공이라는 단어를 제 앞날에서 지워버렸어요. 그보다는 글을 쓰며 얻는 것을  생각합니다. 글뿐이 아닐 거예요. 누구나 무언가를 하며 살아가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의 공을 세우지 못한 사람은 탈락자가  되기 일쑤이지만 그렇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구원을 생각하며 살 수밖에 없잖아요. 죽은 뒤의 구원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의  구원 말이에요. 한 가지 기준으로만 모두가 억압받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건 불행이에요. 제게 있어 글쓰기는 살아 있는 시간 동안의  구원을 이루는 하나의 길입니다. 삶을 증명하는 길 말이지요."
-임하 (오마이뉴스 인터뷰 중)

 기사 전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22962&CMPT_CD=SEARCH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구원을 생각하며 살 수밖에 없잖아요. 살아 있는 동안의 구원 말이에요.' 스스로 젊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명분으로 포장하진 않았나. 돌아보게 되는 이야기였다. 끝없이 배우는 존재란 사실을 한 번 더 인식했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가슴을 쿡쿡 찌르는 기분이 든다.


 왜 글을 쓰는가에 관한 고민은 더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마음대로 될지는 모르지만,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쓴다. 어떻게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다. 시간이 흘러가고 나이가 더해지면서 내 삶이 너무 시시한 건 아닌지 갑자기 슬퍼질 때도 있다. 그 슬픔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은 원하는 것을 조금씩이라도 하는 것이다. 돈만 벌다가 가면 삶이 너무 쓸쓸해질까 봐. 그럴까 봐. 나도 살아가는 동안의 구원을 찾으려는 마음일지도.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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