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서울, 1964년 겨울 (김승옥)
약 50년 전 서울. 아스팔트나 보도블록 아래에 있는 땅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위의 모든 것들은 변했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2018년의 서울엔 개인주의 성향이나 소외 현상은 더욱 심하다. 산업화를 지나면서 예견된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 시발점이 되는 1960년대의 서울은 고독이 난무했다.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만한 마음의 여유도 없었고, 돈, 다시 말하면 자본이 서서히 그늘에서 햇빛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사회에서는 돈으로 인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오늘날의 모습은 약 50년 전의 서울을 극대화시킨 것 같다. 많은 작품 해설서에서 말하는 부정적인 사회, 무기력한 권태, 무의미함 등은 산업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숙명이나 되는 듯하다.
아내의 주검을 4천 원이라는 금전적 가치로 교환하고, 갈등하는 남자의 모습은 변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환경, 사회, 분위기, 문화, 거리의 모습, 건물, 자동차, 거의 모든 것이 변하더라도 인간의 본질만큼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내의 시체와 돈. 이 남자에게 돈은 그냥 돈이 아니다. 아내이다. 인간 내면의 갈등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개인화가 진행되면서 변한 모습 중 하나는 가족 관계이다. 과거에는 동네 어른들이 모두 육아에 참여하며 공동체에 대한 예의나 질서를 함께 가르쳤다. 지금은 부모가 그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산업화가 진행된 사회는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서 부모는 벌이와 육아를 모두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당시에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 만 낳아 잘 살자.’라는 구호가 있었다. 그 결과 인구의 감소를 만들었고, 이젠 자녀를 낳으라고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부모들에겐 육아는 정말 힘겹다. 사랑하는 자식을 두고 일하러 나가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도 아이와 함께해줄 시간이 부족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뎌간다. 소외현상의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서울, 1964년 겨울은 당시 사회 분위기를 감성적으로 이야기한 것뿐만 아니라, 산업화가 가져올 인간의 모습을 그려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내면의 갈등을 죽음으로 풀어간 것이다. 작가가 이러한 상황을 예견이나 한 것처럼, 50년 후의 서울에도 자살이 늘어났고, 과거에 비해서 많은 사람이 돌파구를 죽음으로 찾고 있다. 소외가 죽음을 낳고 있다. 남자가 돈을 화재 현장에서 집어던진 것으로는 내면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았다. 오늘 하루를 그저 그렇게 보낸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작중 개인이 목숨을 버린 것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김승옥 작가의 다른 작품 <무진기행>의 자본주의에 살아가는 주인공의 현실이나, <서울, 1964년 겨울>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현실이나, 모두가 외롭기는 마찬가지이다. 전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러한 외로움이란 사실이 매우 안타깝다. 그리고 그 시대 이후 약 50년이 지난 지금도 외롭다. 돈이 없어서 외롭고, 소통이 되지 않아서 외롭고, 시간이 없어서 외롭고, 지독한 선택의 순간에서 외롭다. 서울, 서울, 서울. 지독하게 더운 여름과 지독하게 추운 겨울 속에서도......
“우리가 너무 늙어 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