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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배뇨 불능

소설) 화장 (김훈)

by 유병천


화장(火葬). 국토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서 권장하는 장례법이다. 작중 인물은 뇌종양으로 투병하던 아내가 죽고 장례를 치르는 동안의 50대 남자다. 주인공은 아내의 죽음을 지켜보며 삶의 덧없음과 허무함 그리고 외로움이 느낀다. 우리 시대 가장들은 지독하게 고독하다. 책임이 따르는 의사결정의 순간이 외롭고, 기댈 사람이 없어서 외롭고, 어떤 상황이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에 외롭다. 회사에서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결정하는 임원으로, 불만을 해결하는 선배로, 매출을 늘려야 하는 회사원으로 살아간다. 아내가 죽은 후 장례식장에서 조차 일의 연속이다. 주인공은 비뇨기과에 가서 소변을 빼낸다. 어쩌면 소변을 못 보는 병도 화장실에 적절한 때 가지 못해서 생기진 않았을까. 참아내고, 참아야 하고, 참다 보니 어느 순간 나오지 않을지도...... 아버지로서의 남자는 딸의 결혼에 목돈이 들어간다. 아내의 장례식에서 받은 돈으로 딸의 결혼 때 빌려 쓴 돈을 갚는다. 물론 자신의 아픔은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또 한 번 외롭고 쓸쓸하다.


남자는 가슴속에 로망을 가지고 있다. 육체는 늙으나, 마음은 늙을 수가 없는 것이 남자다. 아니 사람이다. 누구나 말 못 할 상상을 하면서 살아간다. 어쩌면 각박한 현실 속에서 그것마저 없다면 무슨 낙으로 살아갈까. 눈과 상상만으로 남자만의 로망을 그려간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소변도 변변하게 못 보는 남자가 젊은 여직원에게 품는 마음은 말하지 못하는 감정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남자는 젊은 여직원을 바라본다. 작중 남자는 이 시대의 자화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을 위해서 한 평생 살아가고, 그렇게 늙어가고,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고, 육체는 병들어 가고, 그러면서 가슴속에는 아쉬움과 로망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존재.


남자의 직장은 화장품을 만드는 회사이다. 한자는 다르지만, 화장이란 소설 제목에 아주 잘 어울리는 직종이다.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제품에 하자가 있지만, 투자 금액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포장을 해서 판매를 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낳은 또 다른 풍토이다. 인간도 본모습을 화장으로 가리고 산다. 겉모습을 중요시 여기는 사회, 광고로 포장하는 사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작가는 남자를 통하여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은 아닐까. 하자가 있는 제품을 출시하지 말라. 고객과 대리점의 이익을 보호하는 회사가 되어라. 그렇게 순간순간을 모면하며 살아가면서 얻는 것은 결국 배뇨 불능이다.


작가의 독특한 문체와 소재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작품이다. 조직 속의 남자의 삶. 아버지로서의 삶. 가장으로서의 삶. 그리고 로망을 지닌 남자의 삶.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통하여 앞으로 우리도 비슷한 모습으로 죽게 될 것이고, 번호가 불려지듯 순차적인 의식 속에서 화장될 것이다. 비슷한 죽음의 모습이더라도 미리 알고 준비하면 우리의 삶은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든 오늘 또 하루 죽어간다.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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