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유자 소전 (이문구)
평범한 인물의 전기를 다룬 유자 소전은 노자, 공자, 맹자 등에 붙이는 자(子)를 유씨 성을 가진 유재필이란 인물에 붙였다. 구수한 막걸리 냄새가 나는 사투리를 사용하면서 우리 언어의 표현에 대한 빼어남을 보여준다. 작품을 읽는 내내 ‘사람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유자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도 제법 특이한 행동을 보인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없었던 것이다. 유세장의 전깃줄을 고치는 특이한 이력으로 사회에 진출하지만,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살아가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총수의 집에서는 비단잉어와 불상 사건으로 직책이 바뀌지만, 말도 안 되게 비싼 물고기를 기르는 거대 운수회사 총수를 비판하는 자세가 올곧게 느껴진다. 이후 남들이 꺼리는 업무에도 유자는 자신만의 장점을 살려 최선을 다한다. 아니 최선을 다하는 것을 넘어 일을 잘 해낸다. 그리고 자신의 사비를 털어 타인을 돕기도 한다. 이타적인 삶. 유자 소전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작품은 레미제라블이다. 빵 하나로 인하여 복역하고, 이후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는 장발장(마들렌 시장). 유자나 장발장 모두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는 없다. 누구나 그렇듯이 인간은 결국 사라진다. 행복한 죽음이란 없다. 이들이 보여준 이타적인 삶은 과연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인가? 만약 이것이 진리라면 왜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인 삶을 살아갈까? 역시 어려운 문제이다.
유자를 통해서 시대의 중요한 사건을 보여준다. 그리고 부조리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미련 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옳은 일을 수행한다. 사회에서의 옳음은 시대에 따라서 변한다. 정권이 바뀌고, 혁명이 일어나면서 어제의 옳음이 오늘의 옳지 않음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유자는 사회의 요구보다 자신의 신념이 중요한 사람이다. 어제 누렸던 것이 내 것이 아니라면 미련 없이 돌아선다. 정치판이나 회사나 크게 다를 바 없다. 유재필에게 유자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급격하게 변했다. 변했고 또 변했다. 거기에서 변하고 또 변하는 사람을 변절자라 부른다. 또는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사람이라고도 한다. 이 방향이 긍정적이지 않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변절자를 싫어한다. 그러나 유자는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는다. 우리는 변하고 또 변해도 변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한다.
두 번째 사로 잡힌 생각은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였다. 서커스를 보기 위해서, 영화를 보기 위해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자처한다.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서커스를 고된 일(서커스를 보기 위한)을 한 후 피로로 인해서 결국 못 본다. 그래도 자신이 원했던 일이라 후회가 없다. 사람들은 이렇게 우습도록 열정적인 유자를 좋아한다. 유자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다. 자신이 배운 것을 최대한 활용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렇다. 무엇이든 배운 것은 삶에 도움이 된다. 배움 자체가 중요한 것보다는 배움을 어떤 자세로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한 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악의가 없고, 자신의 재능이 타인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광고판이 되고, 점술가가 되고, 사고처리반이 되는 것이다. 아니 유자는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이라도 타인을 위해서 할 것만 같다. 만약 모르는 것이라면 유자의 특별한 능력으로 또 배우고 행할 것이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평범하게 죽더라도, 평범하게 살아가진 말아라. 자신에게 처한 환경을 탓하지 말고,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라. 운전기사를 할 때에도 친구에게 많은 책을 가져다 읽는다. 유자는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다. 유자의 능력은 결코 우연을 통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유자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선량한 마음이 있었다.
“붝에 제우 지랑밲이 웂으니 뱁이구 수제비구 건건이가 있으야 넘어가지유. 탄불에 궈 자시던지 뱁솥에 쩌 자시던지 하면, 생긴 건 오죽잖어두 뇌인네 입맛에 그냥저냥 자셔볼 만헐뀨”
-<유자 소전> 이문구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