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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과 캐리어, 사은품으로 받은

소설) 큐티클 (김애란)

by 유병천



가볍게 읽히는 <큐티클>을 읽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박민규의 소설이 외로운 화자를 통한 자본주의에 대한 한 방의 펀치라면, 김애란의 소설은 자본으로 된 사회에서 제법 잘 살아가고 있다는 사람들의 '불편한 이야기'다. 공일오비의 노래 가사처럼 ‘이젠 그 사람의 자동차가 무엇인지 더 궁금하고, 어느 곳에 사는지 더 중요하게 여기네.’ 자동차나 집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던 시대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치아나 피부 그리고 손톱까지 세분화를 시켜 놓았다. 산업화 이후의 분업을 넘어서 그야말로 ‘마이크로’한 사회가 아닐 수 없다. 조금 더 있으면 ‘나노’한 세계가 올 것만 같다. "내 콧구멍 아래 인중에 바른 크림은 고래 등에서 채취한 최고급 로션이야."라고 말할 세상도 오겠지. 개인화가 극도로 진행된 최근의 젊음은 유행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다. 정말이지 각자의 개성대로 살아간다.


여자는 손톱과 가방으로 남자는 안경테와 시계로 소비 수준과 구매력을 판단한다.
-<큐티클> 김애란


20만 원 상당의 여행용 가방을 받기 위해 카드를 만드는 주인공. 결혼식장에서 받은 부케가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는 주인공. 무엇이 주인공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소비를 하지 않으면 세상에 도태되는 느낌을 끊임없이 심어준다. 광고를 통해서, 드라마를 통해서 혹은 개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말이다. ‘사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은 소중하다. 그래서 이 정도는 사도 된다.’ 관리받을만한 자격을 갖추셨습니다. 이젠 그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쉽게 쓰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저도 소중하게 당신을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큐티클> 속 2008년의 네일숍에서 열 번의 ‘발림’ 과정을 보여준다. 소비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제 물건을 구매할 때도 여러 번의 과정이 필요하다. 인터넷의 등장하기 이전에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1) 판매점에 간다.
2) 물건을 고른다.
3) 돈을 낸다.

였다. 인터넷 이후의 구매 과정은 좀 더 복잡해졌다.

1) 주변 인물들에게 사고 싶은 물건을 공개한다.
2)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사이트를 조사한다.
3) 한 군데만 조사하면 비싸게 살 수 있으니, 여러 사이트에서 가격 비교를 한다. 물론 가격비교 사이트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4) 가격이 가장 저렴한 사이트를 고른다. 물론 다음으로 저렴한 곳도 골라둔다.
5) 포인트를 가장 많이 적립해주는 곳을 선택한다. 만약 적립카드가 없다면, 적립카드를 만들기 위한 과정을 새로 거치기도 한다.
6)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을 신용카드로 결제한다.
7) 수시로 배송 상황을 확인한다.
8) 택배기사가 오기를 기다린다.
9) 물건이 도착하면 확인한다.
10) 구매확정을 통하여 포인트를 적립받는다.

이렇게 많은 ‘고름’ 과정이 필요하다. 만약 불량이 왔거나, 옷이나 신발의 경우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반품과 재 발송의 과정도 필요하다. 그야말로, 끔찍한 소비의 세계이다. 이 많은 과정을 통해서 물건을 얼마나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을까? 여기에 필요한 자신의 소중한 시간은 생각하지 않나. 경영에서 말하는 기회비용의 손실을 계산해보더라도 분명 손해다. 눈 앞의 작은 이익에 사로잡혀 커다란 손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그랬던가.


흔히 인간은 작은 새처럼 행동한다. 눈앞의 모이에 정신이 팔려 큰 새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을 모른다.
-마키아벨리

소비의 시대를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유혹을 이겨내는 것이다. 광고의 유혹, 충동구매의 유혹, 손해 볼 것 같은 느낌. 결국 불필요한 물건은 <큐티클> 속 주인공이 끌고 다니는 불편한 캐리어(여행용 가방) 같은 것이다. 불편한 하이힐도 마찬가지이다. 다리가 길어 보이려고 신는 하이힐을 신고 불편하게 걷는다. 하이힐을 신는다고 다리가 길어지지 않는다. 단지 길어 보일 뿐이다. 겉모습을 어떻게 포장해도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


젊어 보인다는 것은
젊지는 않다는 이야기이다.
예뻐 보이네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세상 中


필요하지도 않은 신용카드를 사은품에 눈이 멀어 가입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얻으려고 시간을 허비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지. 큐티클을 제거하듯 마음속의 부질없는 욕심을 제거할 수는 없을까?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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