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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Dec 09. 2018

연애와 거래

거래가 되어버린 관계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은 이성(異性)이 아닐까.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된 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단 사실만 봐도 과거와 오늘의 여성의 입장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의 참정권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 활동이 늘어나고 업무 능력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시대에서 내가 느낀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조선시대와 다른 점은 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여자의 경제활동으로 인한 돈벌이는 남자에 대한 의존도를 떨어뜨릴 수 있게 되었다. '현모양처'라는 가치관의 모습도 달라졌다. 과거엔 남편의 출세를 위한 뒷바라지의 형태였다면 현재는 맞벌이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시댁에서도 조용하고 얌전하며 음식을 잘하는 며느리보다 돈 잘 버는 며느리를 더 좋아하는 눈치다. 용돈을 바라서가 아니라 독립적으로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이 작용한 탓이리라. 과거처럼 곳간 열쇠를 물려주거나 하는 일은 현실에서는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부모 세대도 자신의 노후를 감당하기 위해서 곳간이 있다면 모두 털어서 죽는 날까지 써야 할지도 모른다. 모든 집안이 그렇진 않지만, 살아가는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혼을 앞둔 여성에게 '신부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최근에 들을 수 없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오히려 남자가 요리를 배우기도 한다.


 바깥일 하는 사람, 집안일 하는 사람을 상징하던 바깥양반, 집사람이란 말도 점점 사용하지 않는 추세다. 그러나 출산이나 육아의 문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출산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에 관한 이야기는 더는 하지 않아도 잘 알려져 있다. 연애는 서로의 이해와 양보가 필요하다. 혹자는 희생이 필요하다고도 말한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우주가 만나는 일이 간단할 수 있겠는가. 시대가 변하면서 문화도 변한다. 얼마 전에 식당에서 목격한 장면이 있다.


 대학교 앞 식당에 여덟 명의 학생이 들어와서 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 앞에 섰다. 그리고 한 명씩 카드로 자신의 밥값을 계산했다.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더치페이의 방식도 바뀐 것 같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엔 돈을 걷어서 내거나, 친한 친구끼리 돌아가며 밥을 사곤 했다. 밥을 얻어먹음으로써 생기는 마음의 부담이 싫어서 더치페이가 편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두 개의 테이블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밥값을 여덟 번이나 계산하는 식당 주인의 표정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걸 보면 일상화된 현상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도 손해를 보려하지 않으려하는 것이 생활화 된 느낌도 들었다.


밥은 내가 샀으니, 커피는 네가 사!
영화는 내가 보여줬으니, 술은 네가 사면 좋겠어!

 이런 장면은 결혼한 부부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눈빛을 잃어버려서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이런 약속이라도 하고 만난 건가.


내가 밥을 했으니, 설거지는 자기가 해줘.
청소는 내가 할 테니, 쓰레기는 자기가 버려.


 왠지 거래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Give and take!' 연애나 결혼생활에서도 주고받는 것을 따지는 시대인 것 같다. 인간관계가 1:1의 공식으로 성립될 수 있을까?


 뭔가 손해보는 느낌이 든다는 것은 혹시 마음이 식었다는 이야기와 비슷한 건 아닐지.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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