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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Oct 14. 2018

부끄러운 게으름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것


 매일 규칙적인 생활과 꾸준한 운동으로 몇 년을 열심히 살아도 석 달 놀고먹어서 살이 찌면 다시 게을러진다. 쉬고 싶고, 눕고 싶고, 잠자고 싶고, 움직이기 싫어진다. 좋은 습관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을 무너뜨리는 일은 그 얼마나 쉬운가. 엄청난 악필을 극복하려고 일 년 하고도 반을 매일 연습했다. 하지만 조금만 빠르게 써도 예전의 악필은 다시 살아난다.


대충대충 마무리짓고 건성으로 넘어가는 것이 우리 쪽의 부족한 점이다. 상품 제조에서부터 작품 읽기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있는 고쳐야 할 관행이다. 말에 대한 엄밀성은 언어 동물인 인간이 가꾸어야 할 첫 번째 기율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글자 한 자의 빠춤이나 더함이 전 세계의 파멸을 의미할 수 있다>는 것은 탈무드에 보이는 말이다. 유태인의 지적 성취의 기초를 보는 듯한 감이 들지만 어쨌거나 시의 경우엔 신통히 들어맞는 금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언어에 대한 엄격성은 자연 앞에서의 경건함과 마찬가지로 인간 품성의 도야와도 연관된다. 두려움을 모르는 방자한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쓰는 것이다. 말과 글은 사람이다. 
-유종호


 프로그램 언어는 인간의 언어보다 엄격하다. 오탈자 하나에 프로그램은 작동하지 않는다. 프로그램의 오류를 잡는 것처럼 인간의 언어를 사용할 수는 없을까. 프로그램을 개발하려면 설계가 매우 중요하다. 무엇을 어떻게 개발해야 할지 목적을 정한 후 개발해야만 안정적인 프로그램이 탄생할 수 있다. 만약 설계의도와 다르게 개발했다면 과감하게 다시 개발해야 한다. 작가가 글을 쓰다가 원하는 글이 나오지 않으면 버리고 새로 쓰는 것과 비슷하다. 만약 귀찮다고 조금씩 수정한다면 만족이란 단어는 저 멀리 버려야 할 것이다.


익숙해 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 마저 두려울 뿐인데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 중


 게으름과 싸우는 일은 만만하지 않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혹은 마음에 들지 않는 프로그램을 바로 잡으려면 가장 먼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게으름을 던져버려야 할 것이다.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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