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수상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병천 Oct 09. 2018

'바람'의 유통기한

지속되지 않는 소망에 관하여

태권브이 로봇 장난감을 갖고 싶어!

 1980년대 초반에 TV에서 만화영화를 보고 난 다음 날이면 동네 문구점 앞엔 조립식 태권브이가 전시되곤 했다. 부잣집 아이는 태권브이 장난감을 사서 바로 조립에 들어갔다. 직사각형의 상자에는 색깔이 다른 부품이 부위별로 나누어 비닐 안에 들어있었다. 녀석은 집안에서 조립하지 않고 자신의 집 대문 앞에 앉아 설명서를 보며 하나씩 조립했다. 당연히 주변에는 나를 포함한 아이들이 태권브이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행여 부품이 망가질까 봐 조립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침만 꿀꺽 삼키고 있었다. 조립이 끝난 후 스티커를 붙일 때 난 돌아서서 집으로 들어갔다. 완성된 태권브이를 보면 갖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태권브이 장난감을 사달라고 했지만, 당시 당연하게 듣던 두 글자 '안 돼!'를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나이키 운동화, 오리털 잠바를 갖고 싶어 했다. 돌아보면 갖고 싶었던 물건을 갖게 된 경우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갖거나 못 갖는 경우라도 물건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샀을 때의 기쁨은 잠시 뿐이었다.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연금매장을 소개해준 이웃집 아줌마의 생색 가득한 표정이 더욱 기억에 남았다. 물건을 갖고 싶은 마음의 유통기한은 매우 짧은 편이었다.


 이성친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엔 여자 친구가 생기길 바랐다. 노래 가사처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없거나,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성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 다시 말하면 인정받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어려웠다. 마음을 얻지 못했더라도 이성을 사귈 때 '설렘'이란 감정을 선물로 받았다. 하지만, 바랐던 마음과 비슷하게 설렘이란 감정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물건을 갖고 싶은 것보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바람'의 유통기한이 길었다. 사람의 마음은 쉽게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변하기 때문이었다.


 진정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언제부턴가 나 자신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다.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에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저녁이 되면 혼자 술을 마시기도 했다. 남은 인생 동안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가장 많은 시간을 저런 걸 하며 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책장에 있는 아직 읽지 않은 많은 책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이렇게 좋은 취미도 매일 반복하다 보면 지루했다. 쓰고, 듣고, 보고, 읽은 것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진정한 친구가 중요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와 비슷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 친구 한 명이 그토록 소중한 줄 몰랐다.


멋진 친구를 만나는 일이 그토록 근사한 일이었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나는 좋든 싫든 돈을 벌어야 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성취감을 얻기 위해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다행인 건 내가 하는 일이 즐겁다. (단, 가끔 무례한 사람과 일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20년 가까이 회사생활을 하며 지루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지루할 시간조차 허락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단 한 번도 고장 난 적이 없이 흘렀고 환경은 변했다.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 멸종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동물처럼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회사 일이 차지하는 우선순위는 항상 높았다. 프로그래밍을 처음 배울 때 ASP라는 언어로 시작했다. PHP를 지나 이젠 JAVA를 배우고 있다. 다행히 프로그램을 배우는 것이 재미있다. 여기에도 '바람'이 존재할까.


 먹고 싶다. 갖고 싶다. 하고 싶다. 얻고 싶다. 이런 '바람'의 유통기한보다 '의무감' 혹은 '책임감'의 유통기한이 더 길진 않을까.


 유병천.

매거진의 이전글 모피어스의 알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