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고 (홍신문화사)
지인에게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추천 받아서 읽어보려 했으나,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책을 덮었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구토>를 (홍신문화사) 읽어봤다. <지식인을 위한 변명>과 함께 오래 전에 사둔 책을 보며 난 글쓰기에 자신감이 떨어졌다. 사르트르는 196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도 수상을 거부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위대한 작품에 사족을 다는 행위조차 부끄럽게 느껴진다. 몽테뉴의 <수상록>을 번역한 방곤 선생의 번역본으로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작품이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기록해본다.
p23
나는 이 즐겁고 제법 그럴듯한 목소리의 복판에서 외롭다. 이 세상의 모든 작자들은 제 생각을 말하고, 자기들의 의견이 같다는 것을 기쁘게 확인하며 숱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두들 함께 같은 일들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제기랄, 그들은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 사이에 자기들의 내면을 노려보고 있는 듯이 보이는, 그리고 그들과는 결코 의견이 일치할 수 없는 물고기 같은 눈을 가진 한 인간이 들어오는 것을 볼 때, 그들이 짓는 얼굴 표정을 보기만 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p24
‘새로운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고 쓴 것은 솔직하지 않았던 탓이다. 사실은 수치스럽지도 않고 비정상적이지도 않은 짧은 이야기가 입 밖으로 나오기를 꺼려했던 것이다. ‘새로운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사람이란 진실한 것 같으면서도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할 수 있는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새로운 일이란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았다.
p30
나는 지금 책에 매달려 있다. 하루하루 나는 책을 쓸 필요를 절실하게 느낀다 -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p32
자기 반성을 하기에 십상인 날. 인류 위에 태양이 던지는 용서없는 심판과도 같은 냉랭한 빛 - 그것이 눈을 통해서 내 마음속에 스며든다. 사람의 마음을 초라하게 만들어놓는 빛에 의해서 나의 내부가 비추어진다. 확실히 내가 자기 혐오에 떨어지려면 15분이면 충분하리라. 그건 싫다.
p45
그 목소리는 오래 전부터 수많은 음에 의해서 준비된 결과이며, 그 결과를 만들어내고자 수많은 소리가 죽어갔던 결과이다. 그런데도 나는 불안하다. 노래판이 멈추기 위해서는 아주 사소한 일로도 충분하다. 용수철이 망가진다든가 아돌프가 기분을 바꾸면 그만이다. 그 강인함이 그렇게도 약하다는 것은 그 얼마나 야릇하고 측은한 일이냐.
p63
나는 나의 현재를 가지고 갖가지 추억을 만들어 낸다. 나는 현재 속으로 떼밀려 그 속에 저버려진다. 과거로 돌아가려 하나 허사다. 나는 현재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p66
습관은 제이의 천성이라고 파스칼은 말하고 있는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경우에 따라서는요.
p67
모든 종류의 모험이죠. 기차를 잘못 탄다든지, 낯선 도시에 내린다든지, 지갑을 잃는다든지, 잘못 붙들려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새운다든지 하는 일들 말입니다. 나는 모험을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험이란 반드시 비상한 일이 아니면서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는 사건이라고요. 그런 표현이 옳다고 생각하세요?
p72
가장 평범한 사건이 모험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그렇게 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속고 있는 것이다. 한 인간, 그것은 늘 이야기 하는 자이며 자기의 이야기와 타인의 이야기에 둘러싸여서 살고 있다. 그는 이야기를 통해서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본다. 그리고 또 그는 마치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기의 삶을 살려고 한다.
p94
단 하루다. 그들은 월요일 아침에 다시 새 기분으로 출발하기 위해 필요한 젊음을 저축할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그들은 흠뻑 숨을 들이마신다. 바다의 공기가 원기를 주는 까닭이다. 잠든 사람들의 그것과 같은 규칙적이고 깊은 숨소리만이 그래도 그들의 생존을 입증하고 있다. 나는 살금살금 소리나지 않게 걸었다. 휴식하고 있는 이 비극적인 군중들의 한복판에서 나의 튼튼하고 신선한 육체를 어디다 두어야 좋을지 몰랐다.
p97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묘사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구토’같은 것이면서도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하여간 어떤 모험이 나에게서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자문해 볼 때 ‘나는 나며,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이 어둠 속을 걸어가고 있는 것은 ‘나’다. 나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행복하다.
p99
나는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그 모험의 감정, 그것만큼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아마도 없을 거야. 그러나 그것은 오고 싶을 때 온다. 그것은 그렇게도 빨리 떠나가 빨리 떠나가버린다. 그리고 그것이 떠나가버릴 때, 나는 얼마나 메마름을 맛보는지 모른다! 내가 삶에 실패했다는 것을 증명키 위해 그것은 나에게 아이러니컬한 그 짧은 방문을 하는 것일까?’
내 뒤, 그 도시에서, 곧게 뻗은 큰길 속에서, 가로등의 싸늘한 조명을 받으면서 사회적 대사건 하나가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요일의 종말이기도 했다.
p100
나는 어저께 어떻게 그 터무니없고 거창한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나는 혼자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도시로 내려가는 병사들처럼 걷고 있다’고 말이다.
그 모험의 감정은 아무래도 사건으로부터 생겨나지는 않는다. 그것은 증명된 셈이다. 모험이란 차라리 순간순간이 서로 얽히는 그 방법을 말한다. 아마도 그러하리라고 생각된다. 갑자기 우리는 시간이 흐르는 것, 즉 한순간이 다른 순간에 인도되며 그 순간이 또 다른 순간에, 그런 식으로 인도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매순간이 사라지고 그것을 붙잡아두는 게 어리석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매순간 ‘속’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건에서 이 특징의 원인을 찾는다. 즉, 형식에 불과한 것을 내용으로 생각한다. 요컨대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지만 그것을 거의 보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어떤 부인을 보고 그 부인이 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여자가 늙는 것을 보지는 못한다. 어떤 순간에 그 여자가 늙는 것을 보는 것 같고, 또 그 여자와 더불어 자기도 늙는 것을 느낀다. 이것이 모험의 감정이다.
p101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시간의 비가역성(非可逆性)이라고 부른다. 모험의 감정도 간단히 말해서 시간의 비가역성일 것이다. 그러나 왜 사람들은 언제나 모험의 감정을 갖지는 못하는 것일까? 시간이 언제나 비가역성인 것은 아니라는 말인가? 하고 싶은 것, 즉 전진하거나 또는 물러서는 것이 자유자재로 가능하며, 그것이 그다지 중대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리고 또 그물눈이 좁혀진 것 같은 때도 있으며, 그런 경우에는 무슨 일이건 다시 시작할 수 없으므로 실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p115
그들은 다른 방법으로 늙어갔다. 그들은 유산이라든지 선물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가구 하나하나가 추억이다. 조그마한 추가 달린 시계, 메달, 초상화, 조개, 문진, 병풍, 숄. 장속에는 병, 천, 낡은 옷, 신문따위가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보존했다. 과거, 그것은 물건들을 소유하고 있는 자의 사치인 것이다.
나는 어디에다 나의 과거를 간직해 둘 수 있을 것인가? 사람은 자기의 과거를 호주머니에 넣어둘 수는 없다. 과거를 정돈해 놓기 위한 집을 한 채 가져야만 한다. 나는 나의 육체밖에는 가진 것이 없다. 육체만 가지고 있는 아주 고독한 사람은 추억을 간직할 수가 없다. 추억은 육체를 거쳐서 지나가버린다. 나는 슬퍼해서는 안 된다. 나는 자유롭기만 했으니 말이다.
p119
의사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 경험의 직업인이다. 의사들, 신부들, 법관들, 그리고 장교들은 마치 그들이 인간을 만들기나 한 것처럼 인간을 잘 알고 있다.
나는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속고 있으며, 잘난 체하는 놈들에게 농락당하고 있는가를 말해 주고 싶은지 모르겠다. 경험의 직업인이라니? 그들은 그들의 삶을 마비와 반수면(半睡眠) 속으로 끌어갔다. 서둘러서 결혼했고, 되는 대로 자식을 만들었다. 카페에서, 결혼식에서, 장례식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따금 소용돌이 속에 사로잡혀서 그들은 어떤 일이 생기는지도 모르면서 발버둥쳤다. 그들 주위에서 생겨난 모든 일은 그들의 시야 밖에서 시작되어 그 밖에서 끝났다. 모호하게 기다란 형태를 가진 것들, 멀리서 온 사건들이 그들을 재빨리 스쳐가고, 자세히 보려고 했을 때에는 모든 것이 이미 종막을 내렸었다. 그러다가 40대가 되면 그들은 자그만 집착이나 몇몇 개의 속담을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들은 자동판매기 놀음을 시작한다. 왼쪽 구멍에 2수를 넣으면 은종이에 싸인 일화(逸話)가 나온다. 오른쪽 구멍에 2수를 넣으면 물렁물렁한 캐러멜처럼 이빨에 달라붙는 듯한 귀중한 충고가 나온다.
p120
나도 역시 그런 식으로 하면 사람들의 집에 초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그들은 나를 ‘영원’ 앞에서 위대한 나그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회교도는 주저않아서 소변을 본다. 힌두교의 산파들은 에르고틴 대신에 쇠똥 속에 빻아넣은 유리가루를 사용한다. 보르네오에서는 처녀가 월경이 나오면 지붕 위에서 꼬박 사흘을 지낸다.
p121
40세에 가까워지면 발산해 버릴 수 없는 경험으로 부풀어 있음을 느낀다. 다행히도 그들은 자식을 만들었고, 자식들로 하여금 당장에 그 경험을 소비시키는 것이다. 그들의 과거는 없어지지 않았으며, 그들의 추억은 응결되어 오붓하게 ‘예지’로 변하고 있다고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려 한다. 편리한 과거다! 호주머니의 과거, 아름다운 격언으로 가득 찬 황금색의 조그마한 책이다.
‘내 말을 믿으시오. 나는 경험에 입각해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나의 지식은 모두 생활에서 얻은 것이오.’ ‘생활’이 그들을 대신해서 생각을 해준단 말인가? 그들은 새로운 일을 옛것을 가지고 설명한다. 그리고 예것은 더 예것을 가지고 설명했다. 마치 역사가가 레닌을 러시아의 로베스피에르라 하고 로베스피에르를 프랑스의 크롬웰이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결국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그들의 의젓함 뒤에서는 우울한 나태를 엿볼 수 있다. 행렬을 지어가는 외관들을 보고 그들은 하품을 하는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라곤 없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의 모든 과거는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 일은 사라지고 사람이 이해한 것도 그것과 함께 사라져버린다.
보편적 개념, 그것에 사람들은 더 마음이 끌리기 쉽다. 직업인이나 아마추어들까지도 결국은 정당해지고 만다. 그들의 예지는 되도록 소리내지 말고, 되도록 조금 살고, 사람들이게서 잊혀지기를 권한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경솔한 자나 독특한 자가 벌받는 이야기다.
p146
그러나 그의 비판은 칼날처럼 나를 뚫고, 나의 존재의 권리에 대해서마저 의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항상 그것을 알고 있었다. 나에게는 존재할 권리가 없었다. 나는 우연히 생겨나서 돌처럼, 식물처럼, 세균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나의 생명은 되는 대로 여러 방향으로 뻗어갔다. 그 생명은 이따금 모호한 신호를 나에게 보내기도 했지만 어떤 때에는 윙윙 소리밖에는 느낄 수 없었고 그것은 아무런 결과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는 항상 자기의 의무를 수행했다. 자식으로서의 의무, 남편으로서의 의무, 아비로서의 의무, 우두머리로서의 의무. 그는 또 강경하게 자기의 권리를 주장했다. 어린애로서는 단란한 가정에서 오점 없는 이름과 번창하는 사업의 세습자로서 훌률하게 키워질 권리를, 남편으로서는 부드러운 애정에 둘러싸여 공경을 받을 권리를, 아비로서는 존경받을 권리를, 우두머리로서는 불평없이 순종받을 권리를 요구했었다. 왜냐하면 권리라는 것은 또 하나의 의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비상한 성공에 그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결코 그가 행복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또 쾌락을 느낄 때도 ‘좀 쉬어야지.’라고 하면서 절도있게 그 쾌락에 잠겼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처럼 쾌락도 그에게는 권리의 일단(一端)이 되어 쾌락 자체의 그 도전적 경박성을 잃는 것이었다.
p147
“자기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란 얼마나 단순하고도 어려운 일인가!”
p163
나는 펜을 들고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러나 과거, 현재, 그리고 세계에 관한 그 고찰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오직 한 가지, 즉 저작을 할 수 있도록 가만 내버려두기만 바랄 뿐이었다.
그러다 나의 시선이 백지더미 위에 떨어졌을 때, 나는 그 모습에 사로잡혀 펜을 든 채로 눈이 부신 그 종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종이는 얼마나 무자비하게 나의 시선을 끌었으며, 또 얼마나 현존하는 모습을 가졌던가? 거기에는 현재가 있을 뿐이었다. 내가 지금 막 쓴 글씨들은 아직 마르지도 않았건만 그것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p164
나는 나의 주위를 불안한 눈초리로 둘러보았다. 현재뿐이었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현재 속에 들어박힌 가볍고 단단한 가구며 탁자며 침대며 거울이 달린 양복장-그리고 나 자신. 현재의 진실한 본성이 드러나 있었다. 존재하는 것, 그것이 현재였다. 그리고 그 현재가 아닌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사물 속에도 나의 생각 속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나의 과거가 나에게서 빠져나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나는 그것이 나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물러선 것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과거는 은퇴한 것에 불과했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존재 양식, 휴가의 상태, 비활동의 상태였다. 사건들은 제각기 제 역할을 끝내면 스스로 상자 속에 얌전히 들어앉아 명예로운 사건이 되는 것이었다. 그만큼 무(無)를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 나는 알았다. 사물이란 순전히 보이는 그대로의 것일 뿐이다. 그 ‘뒤’에는…..아무것도 없다.
-장 폴 사르트르 <구토> 중 (홍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