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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결과와 고통의 삶

영화 <데시벨>을 보고

by 유병천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https://movie-phinf.pstatic.net/20221116_255/1668578519923H2wVI_JPEG/movie_image.jpg)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205027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느낌이다. 살아가면서 우린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데시벨>은 선택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끔찍한 사건을 통해서 보여준다. 가끔 농담처럼 묻는 말이 있다.


"배우자와 자식이 물에 빠지면 누구를 구할 거야? 둘 중에 한 명밖에 구할 수 없다면."


살아가는 동안 선택의 종류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선택에 대한 결과의 무게는 다르다. 어떤 선택이든 그 선택이 모인 결과가 삶이라고 했을 때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서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영화를 아직 관람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내용을 이야기하지 않다 보니 글을 쓰는 데에 답답한 면이 없지 않다.


물론 선택 이전의 일은 자신이 관여할 수 없는 것이 많다. 의도하지 않은 일, 사고, 혹은 누군가의 조작에 의한 상황을 맞이할 때도 있다. 원하지 않은 일로 인한 선택에도 책임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 된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이미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없다. 흘러간 시간이 그렇고 죽은 사람의 목숨이 그렇다. 소리가 커지면 터지는 폭탄은 어떤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문제라고 인식한 것을 방치해두면 점점 커져서 언젠간 폭발한다. 지구의 사피엔스도 기후변화라는 문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사라져 가는 산소처럼 지구에 사는 인간도 언젠가는 선택의 기로에 서지 않을까?


'어쩔 수 없어!'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이 말에는 엄청난 책임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선택의 결과는 크게 만족이나 후회로 나뉜다고 할 수 있는데, 후회 정도가 아니라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 소리가 커지면 터지는 폭탄을 설치한 사람과 그것을 막기 위한 사람. 모두가 고통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 영화 종반부의 질문이 자꾸 생각난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하실 겁니까?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는 요즘, 극장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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