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상록

선배의 뒷모습

보고 싶지 않은 선배의 앞 모습

by 유병천

어떤 일이든 그 시작은 대부분 배움을 통해서 한다. 나의 첫 아르바이트는 교통정리였다. 공사현장에 들어오는 덤프트럭을 위해 차량을 잠시 통제하고 덤프트럭이 들어오면 다시 지나가게 하는 매우 단순한 일이었다. 공사장에 도착하자마자 담당자가 방법을 일러주었다. 워낙 단순한 일이라서 3분도 걸리지 않았다. 덤프트럭이 도착하면 좁은 공사장 입구로 커다란 차가 들어올 수 있도록 붉은색 표시등을 들고 차량을 멈추게 하는 것이 전부였다. 식당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역시 매니저가 알려준 대로 일을 했다. 작업 난이도가 높지 않은 일은 배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볼 수 있다. 하나는 한 번 배운 후 숙련의 과정을 거쳐 장인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서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것이다. 돌아보면 교통정리나 식당에서 단순한 일을 하는 경우엔 별도로 공부할 내용이 별로 없었다. 만약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만들거나 요리사라면 꾸준한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직업을 선택할 때 한 번 배운 것으로 오래 돈을 벌 수 있길 바란다.


운이 나쁜 경우엔 자신이 심혈의 기울여 공부한 분야가 통째로 사라질 수도 있다. 강의 때 자주 이야기하는 사례가 무선호출기(삐삐)이다. 무선호출기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자라고 해도 스마트폰 시대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기술이 되어버렸다. 새로운 환경에 따라서 변화를 선택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정보통신 분야만 유난히 변화가 잦은 것일까? 무어의 법칙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변한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숨이 벅찰 지경이다. 그렇다고 포기하면 무선호출기의 신세가 되고 만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땐 선배에게 배운다. 열심히 공부한 후배가 어느 순간 선배보다 더욱 잘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 다니던 직장의 후배가 이와 같은 하소연을 한 적도 있었다.


2년 동안 열심히 하니까 제가 제일 잘해요. 이제 선배들이 저에게 물어봐요.

그때부터 선배들은 이 후배가 눈에 가시처럼 느껴졌는지, 괴롭히기 시작했다. 일이 많을 땐 잘하니까 시키고, 자신을 뛰어넘으려고 할 땐 핍박하는...... 후배는 선배의 뒷모습을 보면서 성장한다. 후배가 앞서 나아가 뒤에 오는 선배의 앞모습을 본다면 그 조직은 피곤함을 면치 못할 것이다.


대학 등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자신만의 필살기'를 만들라고 이야기한다. 필살기는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후배에게 멋진 뒷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것은 아닐까.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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