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당신의 생각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는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
-솔개 (이태원)
이태원의 '솔개'라는 노래가 생각나는 날이 있다. 말은 엎질러진 물과도 같아서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자신감과 거만함을 판단하는 것도 타인에 의한 것처럼 말 역시 마찬가지이다. 말하는 자의 의도를 듣는 이가 모두 알 수 없고, 듣는 자의 배경지식이나 심경을 말하는 자가 모두 알 수 없다.
이러한 차이가 오해를 낳는다.
아무리 논리적인 말이라도 그것이 상대의 신념을 건드린다면 불쾌함을 유발한다. 나에게 좋은 방법이 타인에게 좋은 방법이 되란 법은 없으니까. 이런 사항을 인식하고 있더라도 대화 중에 혹은 질의응답 중에는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평생 축구만을 좋아하던 축구 광팬이 있다. 축구에 관심 없는 어떤 사람이 축구에 관하여 '공을 골대에 넣는 것에 열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말했다고 치자. 말한 사람은 악의적인 의도가 없더라도 축구만을 좋아하는 사람은 화가 날 수 있다.
사람과의 소통에 지치면 말하기 싫어진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말을 많이 하면 오해도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는 것처럼. 공상과학영화처럼 텔레파시로 서로의 생각을 전부 읽는다면 어떨까. 이미 서로의 생각을 전부 알고 있으니 소통할 필요가 없을까.
실수로 말했든 의도와 다르게 상대가 이해했든 그걸 설명하는 과정은 무척 피곤하다. 왜 그런지 박민규 작가의 '조까라 마이싱'란 글이 생각나는 하루다. 큐알을 지나서 태블릿의 시대인데......
세상에는 70억의 인구만큼의 생각이 존재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하는 가족, 친구, 동료의 생각조차 알지 못한다. 신념을 가지고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갈 뿐 더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다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싶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지만......
들리지 않겠지만, 이렇게 불러보고 싶은 날이다. 박민규 작가님, 당신의 싸움은 아름답습니다. 저도, 힘을 내겠습니다.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