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은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배우려는 태도에서 나온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배우려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 자신감을 보이는 것을 타인이 알 수 있을까? '모든 것을 배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 마음에서 나오는 자신감이라도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을까?
하지만, 자신감 넘치는 사람은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어떤 일이든 잘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주목을 받는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배경지식에 따라 다른 태도를 취한다. 부러워하거나 질투하거나.
익숙해져서 그런지 오랫동안 만난 사람을 대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사람은 옛사람이 좋고, 물건은 새 물건이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옛사람이라도 현재에 불편한 경우가 많고, 새로 만난 사람이라도 좋은 사람이 많다. 어쩌면 옛사람이 편하다는 말은 오래도록 좋은 사람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친하다
우린 살면서 친한 친구, 친한 형, 친한 누나, 친한 동생, 친한 언니, 친한 동료, 친한 후배, 친한 선배 등 친하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친하다는 말은 과연 어떤 말일까. 어떤 사람과 친해질 수 있을까.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은 없다. 노 시인의 말처럼 '죽기 전에 자신이 알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나 자신뿐'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깊이 생각해보면 사회적으로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을 하는 사람. 자신이 잘하는 것이 한 가지라도 있는 사람.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축복할 수 있는 사람. 적어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으며 살아간다고 하는 사람.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타인과 친해질 수 있다.
사람이 친해지는 것에는 오랜 세월도, 가진 재산도, 배운 지식도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진심만이 필요할 뿐이다. 친함과 결코 친해질 수 없는 단어는 부러움과 질투이다. 자신감과 거만함 이야기를 하다가 부러움과 질투 이야기를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거만한 사람 혹은 자신감 넘치는 사람은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닌가. 어떤 사람이 아무리 '저는 거만하지 않습니다. 배우며 즐겁게 살려고 하는 것뿐입니다.'라고 주장해도 타인이 거만하다고 생각하면 그는 거만한 사람이 되고 만다. 타인의 생각을 변화 시켜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아는 사람은 결국엔 하나의 견해로 인식하고 넘어갈 뿐이다.
잘난 게 별로 없는 사람이 잘난 척을 한다고 그게 정말 잘난 것일까.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 아는 척을 한다고 그게 정말 아는 것일까? 우리는 2000년 전의 인류와 크게 달라진 점이 있을까? 데모크리토스와 플라톤의 이야기만 살펴봐도 서로 다른 견해가 얼마나 다른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웃음을 강조하던 철학자와 웃음을 경멸한 철학자의 태도에 의해 훗날 인류가 겪어야 할 상황은 매우 달라졌으니까......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는 없다.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하는 세상에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일에 만족하며 살아갈 뿐.
겸손하든 거만하든,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진리와 건강한 신체의 건강한 이성'을 추구하며 자신감 넘치는 삶을 살아가 보자.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단 한 명의 친구를 만드는 일이 어렵지만, 그 어려운 도전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리라.
힘들고 지칠 때 당신을 아는 사람이 '누군가 자넬 위해 기도하네.'라고 말했을 때 그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른다면 그 삶은 매우 가치 있는 삶일 거라 믿는다.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