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상록

소통에 관하여

뜻이 통하여 오해가 없다

by 유병천


운동하기 전에 1회용 콘택트렌즈 착용을 시도했다. 눈에 렌즈를 넣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일생 동안 두 번째로 시도한 렌즈 착용은 5분여 만에 성공했다. 정확히 말하면 성공한 줄 알았다. 세 시간 정도 운동 후 렌즈를 빼려고 거울을 봤을 때, 한쪽 눈이 새빨갛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렌즈를 착용할 때 상처가 난 모양이었다. 평생 동안 이토록 충혈된 눈을 본 적이 없었다. 약 5분간의 일(렌즈를 눈에 착용하는 일)로 인해서 새빨간 눈으로 한참을 살아야 했다. 신기한 일은 눈이 충혈되었는데,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는 것이다. 렌즈를 끼면 이런 느낌이 나는가 보다고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렌즈를 빼낸 후 눈을 봤을 땐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평소와 다른 눈을 가진, 다른 모습의 내가 보였다.


사람은 자신이 투자한 시간만큼 어떤 일에 능숙할 수 있다. 전문분야라는 것은 그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분야를 말한다. 렌즈를 착용하지 않고 살던 기간을 40년, 렌즈 착용 시간 5분, 충혈된 눈의 회복시간 20일. 고교 때부터 20년을 넘게 안경을 썼다. 다시 말하면 난 안경 전문가인 셈이다. 안경을 오래 썼다고 해서 렌즈를 잘 착용할 수는 없다. 렌즈도 자주 착용하면 숙달이 되어 상처 없이 짧은 시간 안에 넣을 수 있게 된다. 미숙하게 끼운 렌즈로 인하여 20일 동안 붉은 눈으로 살면서 소통에 관하여 생각해봤다. 살면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 소통했다. 시간 투자를 많이 한 측면에서 보면 난 소통 전문가가 되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소통을 잘할 거란 인식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많은 사람을 만나며 느낀 점은 소통 많이 한다고 해서 전문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소통(疏通)이란 단어가 트일 소에 통할 통으로 되어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막히지 않고 잘 통함. 뜻이 통하여 오해가 없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다. 소통을 잘하려면 오해가 없어야 한다. 다년간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오해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할까 고민해봤다. 고민에 대한 답은 '불가능'이다. 사람은 생김새가 다른 것보다 생각이 훨씬 다르다. 같은 그림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 다르고, 같은 음식을 먹고도 느끼는 맛이 다르다. 인간에게 과연 완벽한 이해란 것이 있을까.


인간관계 중 본지 오래된 사람이라고 해서 오해가 없는 사이일까. 혹은 10년 동안 일상을 함께한 사이라고 해서 오해가 없을까. 20년을 키운 자식이라고 해서 완벽한 이해가 가능할까.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이해와 오해가 공존한다. 같은 현상을 겪더라도 가치관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진다. 20년 동안 친했던 사이라도 5분간의 대화에서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다. 안경을 쓰던 사람이 렌즈를 잘 못 착용하는 것처럼. 충혈된 눈은 다행히 20일 만에 회복이 되었지만, 나빠진 관계는 과연 회복될 수 있을까.


신뢰란 단시간에 배울 수도 없고, 필요할 때마다 사거나 구걸해서 얻을 수도 없다. 그것은 삶 그 자체다. 그래서 신뢰는 유리 거울과 같다. 한 번 깨지면 다시 붙일 수 없으며, 만약 붙이더라도 왜곡되어 보인다.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세상

한 번 틀어진 관계는 좀처럼 회복될 수 없다. 아무리 성능 좋은 본드가 있다고 해도 깨진 거울이 깨지지 않는 거울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소중한 관계라면 자신이 소통 전문가가 아니란 사실을 인식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좋은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단 5분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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