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만나던 사람이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을 때 머릿속에서는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물론 어떤 사이냐에 따라서 생각의 종류는 다르다. 가족이라면 건강이나 안부가 걱정될 것이고 친구라면 혼자 맛있는 거 먹으러 갔나 하고 살짝 짜증이 날 수도 있다. 술을 좋아하는 연인이라면 술병이 났나 생각할 것이고 출장을 자주 다니는 거래처라면 또 해외에 나갔나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돈을 빌려간 사람이라면?
1990년대 중반에 난 낚시를 좋아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조용한 새벽 저수지에 낚싯대를 던지고 자연을 벗 삼고 있으면 기분이 무척 좋았다. 자연스레 낚시 도구를 판매하는 매장에 자주 갔고 그곳 주인장과 제법 친해졌다. 20대 중반의 나이였던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도 함께 누리고 있었다. 낚시 용품점에 낯선 사람이 있었고 미 팔군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20대 초반에 몇 달간 미 팔군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한 적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남자는 내가 아는 장소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중간중간 나도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문제는 '리바이스 청바지'란 단어에서 발생했다. 당시 제법 비쌌던 청바지를 본인은 매우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난 가장 좋아하는 모델을 말하며 얼마면 살 수 있냐고 물었고, 남자는 3만 원이면 살 수 있다고 했다. 동네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미 팔군에서 일하는 사람이 청바지를 3만 원에 살 수 있다고 했더니 두 명의 친구가 달려왔다. 난 친구들과 함께 남자를 차에 태우고 용산으로 갔다. 주차 문제로 미 팔군 게이트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남자를 내려주고 각자의 청바지 사이즈를 말하며 9만 원을 건넸다. 금방 다녀온다던 남자는 한참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쪽지에 메모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고 친구들의 눈총은 따가웠다. 낚시 매장에 전화를 걸어 남자에 관해서 물었다. 주인장은 당일 처음 온 사람이라고 말했다. 당시의 난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어서 당연히 단골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수업료를 내고 사기꾼에 관한 학습을 할 수 있었다.
사기꾼을 분별할 수 있는 혜안을 갖추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사기꾼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컴퓨터 소프트웨어에서도 해커와 백신의 싸움이 치열하다. 찌르는 창과 막는 방패. 많은 전문가들이 이 싸움에서는 방패가 항상 불리하다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공격하는 해커는 방패를 보고 창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업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인생에는 백업이 불가능해서 문제이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사기 형태가 존재한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보이스피싱부터 메신저 피싱, 랜섬웨어, 이중계약, 부동산 사기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다. 사기를 당해본 사람이라던가 보이스피싱에 관한 교육을 받은 사람은 피해를 볼 확률이 줄어들지만 꾸준히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긴다. 이번에 이야기할 내용은 일상의 사기꾼이다. '신뢰'와 '사기'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일상의 사기꾼은 신뢰를 이용해서 사기를 친다. 살면서 이런 상황을 두 번 정도 봤다. 이들이 사기를 치는데 걸린 시간은 10년 정도다. 10년 동안 한결같이 잘해주고 마음을 쓴 사람이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이다. 이들의 특징은 오랜 시간을 한결같이 잘해주고 단 한 번에 사기를 치고 달아난다는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이 큰돈을 빌려주고 연락이 되지 않자 서로에게 묻는다. 그 사람 연락이 안 된다고. 저마다 자신도 그렇다고 이야기한다. 혹시 돈을 빌려줬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본 두 번의 내용은 장소와 사람만 다르고 방법은 매우 유사했다.
작정하고 사기 치려는 사람은 방패를 보고 창을 만드는 사람처럼 막기 힘들다. 웬만하면 가까운 사람과 돈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그들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갑자기 친절한 행위를 한다거나, 제법 가격이 나가는 선물공세를 한다. 혹은 정말 특별하다는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사실 자신의 귀에 들어오면 이미 특별한 정보가 아닐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20대 중반에 '리바이스 청바지'에 눈이 멀어 3만 원이라는 수업료를 내고 비슷한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다. 무지했고 욕심에 눈멀었던 자신을 인정하며 다시는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다짐도 한다. 뜻하지 않은 값비싼 선물을 받고 우쭐한 기분으로 경솔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 대부분 문제가 발생한다. 3만 원짜리 청바지야 훌훌 털어버리고 잊을 수 있지만, 금액이 억이 넘어가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부동산, 자동차, 명품 등 값비싼 물건으로 사기를 당하면 매우 곤란한 상황이 닥친다. 사기를 당한 사람이 남 탓을 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자신에겐 문제가 없는데 남 때문에 사기를 당한 거라고 핑계를 댄다. 그런데 선물 받을 때 좋아하지 않았는가. 남 탓해봐야 당한 후에는 소용없다.
일상을 파고드는 사기꾼은 오랜 기간 공들여 사기를 친다. 한 방울씩 야금야금 떨어지는 물이 바위에 구멍을 내듯. 사기꾼은 일확천금을 바라는 사람의 마음을 공격한다. 튼튼해 보이는 방패라도 빈틈이 발견될 수 있다. 인간에게는 욕망이 빈틈일 수 있고 결핍이 빈틈일 수 있다. 생길 것 같지도 않은 행운을 기대하기보단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행복을 위해 한 걸음씩 걸어 나가는 것이 사기에 대비하는 방법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