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걷는 이 길, 우연일까 운명일까?

네가 찾는 것이 너를 찾고 있다 (Rumi, 시인)

by 유강

안식년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빠른 은퇴를 꿈꾼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나는 은퇴를 꿈꾸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오래도록 일하고 싶다.


돈을 번다는 것은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여전히 사회에서 필요로 하고 있다는 소속감을 주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쓰임이 있다는 사실은 내가 사회 속에 살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고립을 견디는 힘은 약해질 테니, 적은 돈이라도 내 능력에 맞는 일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며 살아가고 싶다.


다행히 나는 내가 하는 일을 꽤 좋아한다.


그리고 안식년 후에도 지금 일을 계속하고 싶다.


물론 처음부터 이 길을 평생 직업으로 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교를 막 졸업했을 무렵 불기 시작한 ‘몸짱’ 열풍과 바디프로필 유행에 이끌려, 멋진 바디프로필을 남기기 위해 PT를 받았다.


내가 있던 지역에서는 아직 1:1 PT 전문점이 별로 없었고, 값도 비싼 편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배워서 운동해 보자는 마음에 모아둔 돈을 모두 써서 PT수업을 결제했다.


수업이 반복되면서, 몸 쓰는 법을 알아가니, 하나둘씩 궁금한 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인터넷에 정보가 많이 없던 때라, 트레이너에게 궁금했던 점을 물어봤다.


그러나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충 이렇다더라’로 끝났다.


엉덩이가 왜 왼쪽으로 기울어져서 앉아지는지, 벤치프레스를 한 후에는 왜 어깨가 왜 찌르는 듯 아픈지, 유산소는 몇 분을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지 등등 해결되지 않는 질문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수업에 드는 비용이 커질수록 답 없는 공백도 더 커져만 갔다.


결국, PT를 결제할 돈으로 ‘차라리 내가 직접 공부해 보자’는 결심이 섰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세미나가 별로 열리지 않았기에, 다양한 이론과 실기 강의가 열리기 시작한 서울로 갔다.


취미로 내가 궁금한 것을 알고 싶어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갈증이 해소되면 언제든 그만두고 취업 준비를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돈과 시간이 생길 때마다 세미나를 신청했다.


그렇게 내 몸의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재미에 빠져있다 보니 1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내 손에는 각종 세미나 수료증과 함께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이 있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그냥 트레이너를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내가 예전에 다녔던 곳에 취직했다.


마침 피트니스 시장이 호황기라, 내가 다니던 센터가 2호점을 준비하고 있었고, 어렵지 않게 일을 구할 수 있었다.


분이 없을 때도 취미로 듣던 교육인데, 이제는 명분도 생겼으니 교육도 마음껏 들어보자는 생각에, 주말이나 쉬는 날이면 다시금 세미나와 워크숍, 자격증 과정 등을 찾아다녔다.


새로운 배움은 재밌고,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서는 묘한 소속감도 들어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배우는 즐거움에 2년을 더 보내고 나니, 내 손에는 다양한 자격증과 수료증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중에 ‘생활체육지도사’ 자격증 하나만 국가공인 자격증이고, 나머지는 모두 사설기관에서 발급한 자격증이나 수료증이었다.


물론 머리와 마음속에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이 쌓였지만, 딱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자격증들이 쌓이자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기왕 배움에 돈을 쓸 거면 공신력도 있고, 있으면 확실히 도움이 되는 곳에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7년이라는 시간이 더 흘렀고, 지금은 체육학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으며, 여전히 트레이너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도중에 일을 그만두고, 다른 것에 도전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멈춤은 6개월을 넘지는 못했다.


여행스냅사진작가를 준비하려고 센터를 그만두고 사진을 배우고 있는데, 팬데믹이 터져 출국 길이 막혔고, 사진과 영상을 실전에서 써보려고 작은 회사에 들어갔는데 회사가 문을 닫아, 갈 곳을 잃기도 했다.

호기심이 일어나 다른 길을 걸어보려 해도, 이상하게도 경력의 ‘교차로’에 서면 다시 트레이너라는 직업이 눈앞에 나타났고, 어렵지 않게 다시 취직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원래부터 이 일을 평생직업으로 생각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때그때 호기심을 따라 움직였고, 순간적인 결정을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매번 길이 갈라지는 교차로에서 어김없이 트레이너라는 직업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매번 그 응답에 다시 돌아왔다.


물론, 지금은 다시 방랑벽과 권태기에 휩싸여 안식년을 갖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안식년의 끝에서 다시 트레이너로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