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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광식 Mar 13. 2022

전봇대

유년기 마을 길가에는 전봇대가 인생의 작은 이정표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스마일 표정에 조금 미치지 못한 처진 전깃줄에서는 간혹 참새와 까치, 참매 등이 휴식을 취하곤 했다. 비가 오면 전봇대가 감전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었고 매서운 겨울바람에 줄이 끊어지지 않는지 지켜보기도 했다. 기다란 대나무 막대기로 때리고도 싶었으나 너무 높았다. 

간혹 전봇대를 지주 삼아 그네를 걸면 참으로 장관이겠다고 생각했다. 

스마일 궤도를 그리며 오르내리는 기분은 어떨까 상상하면서 말이다. 

일본 가나자와현 ‘유와쿠 창작의 숲’에는 기다란 대나무 4개를 모아 그네를 만들어 놓았다. 나무와 돌로 만든 전봇대와는 달리 탄력이 있어 

무섭기도 했는데 사람들이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인천 열우물 단오축제에서 언제인진 모르지만 실제 전봇대를 

상정초등학교 운동장에 묻고 그네놀이를 했다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전봇대는 기다란 돌 막대기다. 무덤가의 비석처럼 길가에 자리해 말없이 세월을 보낸다.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전기와 통신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현대에는 땅속에 묻어 보이지 않게끔 하는 추세다. 검단에는 

여전히 전봇대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신도시 개발로 인해 줄 끊어진 초라한 전봇대가 눈에 많이 띈다. 수없이, 막힘없이 생활을 충전해 주던 선이 끊어졌다. 축 늘어진 줄을 타고 오르니 전봇대가 보인다. 평소엔 

주변 색에 묻혀, 보지도 않고 걸리적거린다고 투덜대기도 했다. 

위험하다고 오르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자꾸 고개를 들어 눈으로 

오르곤 한다. 


늦은 밤 훌륭한 화장실이 되어 주기도 하고, 신촌과 대학로에서는 최고의 포스터 알림판이었던 전봇대가 썩은 이 뽑듯 뽑혀 나가는 현실이 

원망스럽다. 뒤돌아 생각하면 나의 전기는 전봇대에서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검단의 도로에서 흙먼지 뒤집어쓰면서도 장엄하게 서 있는 

그를 보면 참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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