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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광식 Nov 30. 2022

암벽

건물 승강기 안에는

입주 전후로 오염과 파손을 막기 위해 일정 기간 보양재를 설치해 둔다.

들어서자마자 뒤섞인 시큼한 체취에 눈과 코를 비틀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겪어 낸다.


학생들이 자주 오르고 내리는 승강기 출입문은 정보 게시판이나 다름없다.  

문 안팎이 모조리 낙서다. 

건축과 연관한 업체들의 스티커나 글귀도 많지만 

청소년들의 짓궂은 표현도 많다. 

건물 상층부는 대개 학원이다.


빤히 쳐다보며 계속 읽게 된다.

공부에 대한 투정은 기본이고

친구의 이름, 암호, 그림 등이 조금 전까지 배운 수열의 법칙과는 

꽤 거리가 멀게 나타나 있다.

그래도 나무를 그려 넣은 친구가 있어 반갑다.  


지금도 분필을 쓰는지는 잘 모르지만

사라진 분필만큼 승강기에 무언가 그려지고 있음을 

학원 선생님도 알 것이다.

저속한 말 속에 그들의 나이가 보이고

몰라보게 쓰였어도 선후관계를 따져 볼 수 있는 문구까지

아이들의 성장이 제대로인지는 알 수 없어도

빠르게 달리고 있는 건 확실하다.


검단신도시에 유입 주민이 늘면서 덩달아 아이들도 많아졌다.

군데군데 숨어 있는 반딧불처럼 말이다.

승강기에 가둔 메마른 낙서라고는 하지만, 

글이자 그림이고 말이라 생각하니 

문이 열리기 전에 내 생각을 먼저 열고 놀게 된다.


도착한 2층에는 아이들이 없다.

문득 ‘내가 술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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